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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소백산

2017년 01월 31일 [주간문경]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대구지검 상주지청

ⓒ (주)문경사랑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유의지와 정상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자연과의 대립은 힘겨웠다. 한 발을 내딛는 다리의 근육은 이미 굳어져 쉽게 벌어지지 않고 찬 기온에 얼어버린 장갑 안의 손은 감각이 무뎌진지 오래였다.

칼바람이 나무 하나 없는 능선을 지체 없이 후려치며 지나갔다. 그 능선 위에서 온전히 바람을 맞고 걸었다.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유의지는 꺾여 지지 않았다. 다만 질끈 눈을 감고 앞으로만 나아갔다. 어서, 이 능선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오르는데 세 시간여가 걸렸다. 등산길은 지금과 달랐다. 며칠 전 내린 눈으로 산은 온통 눈밭이었다. 상고대는 높이 오를수록 환상적이었고 겨울 산의 맛과 멋이 소백의 품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 함께 한 산우(山友)들은 모두들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따뜻한 기온과 잦아진 바람 그리고 눈 덮인 자연의 설경은 산행에 최적이었다. 정말 리얼(real) 소백산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금 걷고 있는 400여미터에 달하는 비로봉 능선 위에서, 지나온 산행은 꿈이었다. 따뜻한 기온은 냉혹한 칼바람에 영하(零下)가 되었고 바람은 한 순간도 잦아짐 없이 혹독하게 몰아치기만 했다. 안타깝게도 장갑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한지 오래고 모자와 귀마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진정(real) 소백산, 겨울 소백산의 모습이구나. 정말 소백산을 몰라봤구나. 끝없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에 누가 있는지 볼 수가 없었다. 다만, 조금 전 큰 바위에서 바람을 피하고 있던 부자(父子)와 함께 온 산우가 앞에 걸어가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는 그의 아들이 걱정이었다. 첫 산행이라며 수줍게 웃었는데 복장이 마음에 걸렸다.

무엇보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손이었다. 옷은 넉넉히 입었지만 장갑만은 칼바람에 속수무책이었다. 장갑 안에서 손을 오므리며 체온을 유지하려 애쓰지만 역부족이었다. 어서, 이 소백평전의 비로봉 능선을 벗어나야만 했다. 오늘 따라 드넓은 조망도 보이지 않았다. 평상시 같으면 국망봉과 연화봉이 비로봉을 중심으로 장대한 등줄기를 드러낼 터이지만, 멈추지 않는 칼바람에 주위는 안개뿐이었다.

이것이 리얼 소백산이구나. 겨울의 소백을 잊지 않아야겠구나. 다짐하고 다짐했다. 정상이다. 1,439미터, 백두대간의 거친 등줄기 소백산 비로봉이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서 바라보면, 멀리 이 비로봉이 보인다. 고즈넉한 늦가을의 오후에 겹겹이 너울진 산봉우리 가운데 제격으로 보이는 우뚝한 봉우리이다. 무량수전의 주불(主佛)이 아미타불이면서 이 봉우리의 이름이 비로봉인 것은 비로자나 부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는 무량수전의 부처는 아미타불과 비로자나불, 즉 이불병좌(二佛竝坐)라고도 하는 것이다.

잠시, 저 천년 고찰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최순우 선생이 읊은 명문장을 옮겨보자.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히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돌이켜 보면, 오래전 최순우 선생께서 소백산 비로봉을 바라보며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하였을 터이지만, 정작 지금 비로봉에서는 그 아름다움을 반추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진정한 소백산은 무엇인가. 다시, 칼바람을 맞으며 되돌아온 길을 내려갔다. 400여 미터 능선 길을 또 걸어야 한다. 오늘 지금 이 순간의 소백산은, 이것만이 리얼 소백산이다. 새해 어둠을 몰아내고 새빛을 밝히려는 칼바람을 뒤로 했다. 곧 새해 정유년이 밝아오고 있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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