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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문(鹿門)

2016년 02월 05일 [주간문경]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대구지검 상주지청

ⓒ (주)문경사랑

 

산양면 녹문마을을 들어갔다. 산양면의 금천교를 지날 때 마다 녹문이라는 마을의 이정표를 보았었다. 그때마다, 언젠가 저 마을에 들어가 보았으면 하였다.

굳이 ‘들어갔다’ 라는 표현을 한 이유는, 저 마을 안에는 우리 기억 속 내밀한 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2000년대 초, 안동대학교 민속학과에서 우리 지역의 전통마을을 조사할 때, 산양면의 현리와 함께 이곳을 학술 조상 대상지로 저울질 하였을 정도로 녹문은 유서 깊은 전통 마을이다.

녹문(鹿門).

오래된 마을이 그러하듯, 이 이름도 남다른 유래가 있다. 19세기, 이 마을에 고성겸이라는 유학자가 있었다. 그는 학문이 깊고 성품이 온화하여 따르는 제자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의 호인 녹문을 마을 이름으로 정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살펴보면, 어느 때라도 사람의 이름으로 마을과 도시의 이름을 짓는 것은 흔하지 않다. 공동체 전체의 공감과 실행력이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개방된 사회가 아닌, 조선시대 보수적인 유교사회에서 사람의 호(號)로써 마을의 이름으로 정하는 것은 드문 일인 듯하다.

마을에는 경북도 문화재자료(365호)인 고택이 있다. ‘고병숙 가옥’이라고 일컫는 200여년된 전통한옥이다. 솟을 대문이 보이는 집 앞에는 집의 역사만큼 더 오래 되었을 큰 회나무가 우뚝하다. 넓은 품과 높은 키는 한옥의 녹녹치 않은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시내에서 살다가 5년 전, 이곳으로 이사를 왔어요.”

집을 관리하고 있는 이의 말이다. 고택은 사람이 살지 않으면 허물어지고 훼손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곳에 들어와 사랑채는 비워놓고 안채에 거처하면서 집에 온기와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이 집은 1980년 서울대 총장을 지낸 녹촌 고병익 선생의 생가이기도 하다. 그는 역사학자이면서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사학계에서 인정받는 인물이었다.

집 주인인 고병숙은 그의 친형이 된다. 사랑채의 벽에는 녹파정사(鹿坡精舍)라는 현판 글씨가 뚜렷하였다. 녹파는 사슴이 뛰어 노는 고개를 이른다. 그러고 보면, 이곳에는 집과 사람의 이름 등에 사슴 녹(鹿) 자를 유독 많이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함께 한 마을 주민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옛날, 마을 뒷산에서 사슴과 노루가 많이 내려왔다고 해요. 그래서 마을 이름을 서리기(서록리: 사슴이 사는 마을)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그렇다면, 마을의 이름이 녹문이 된 연유가 짐작이 가기도 한다. 유학자의 호(號)이기도 하지만, 이름처럼 사슴이 드나드는(門) 마을이었음을 짐작케 하는 것이다.

녹파정사의 고병익 서울대 총장의 호가 녹촌인 것은, 그가 고향을 떠나 타향에 있으면서도 이곳 녹문마을, 녹촌(鹿村)을 잊지 않으려는 애향의 마음 때문이다.

200여년 가까운 세월의 무게로 고택은 낡고 쇠락해 보였다. 다만 솟을 대문과 행랑채가 기세 있는 집안의 옛 흔적을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ㅡ’자 형의 사랑채와 ‘역 ㄱ’자 형의 안채, ‘ l’ 자 형의 아래채가 원형이다. 아래채는 허물고 그 자리에 화장실을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대문 앞쪽과 달리 무너져가는 뒤쪽의 벽돌담이 눈에 거슬렸다. 여러 가지로 보완되어할 부분들이 적지 않은듯했다.

겨울, 깊은 저녁이 밀려오고 있었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작고 야트막한 산이 편안히 눈에 들어왔다. 산과 마을에 뛰놀던 사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때처럼 사슴들이 드나들 때가 다시 올까. 녹문을 나왔다.

(010-9525-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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