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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연정(戀情) - 도천사지 삼층석탑

2014년 04월 24일 [주간문경]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대구지검 상주지청

ⓒ (주)문경사랑

 

봄날, 주암정을 찾았다.

산 아래 정자 옆에 산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야트막한 산과 키를 다투는 오래된 고목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하얀 꽃들이 피어났다.

흰 꽃잎들은 잿빛 정자와 어울려 그림이 되었다.

바람이 연못에 물결을 만들고 떨어진 꽃잎들을 한곳에 모았다.

떨어진 꽃잎은 절정의 쇠락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아름다웠다.

다시 바람이 불었다. 또 물결이 일고 가녀린 진달래꽃들이 하늘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또 보았다.

문득, 주암정 산 너머에 있는 도천사 옛 터가 떠올랐다.

봄이 왔지만, 석탑 세 기를 잃은 상심(傷心)으로 여전히 그곳은 봄이 오지 않았을 듯했다.

홍도화와 진달래, 산벚꽃이 만개한 주암정을 뒤로하고 산양큰마을의 금천(錦川)이 바라보이는 옛 터로 갔다.

이곳이다. 날렵하면서 빼어난 조형미를 뽐내던 통일신라시대 탑 세 기가 비단 같은 금천을 바라보며 천 년을 서 있던 곳.

탑 하나에 한 가지씩 소원을 빌며 이곳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과 위로를 주었던 숱한 사연이 깃든 곳.

그래, 개나리 피고 진달래 하늘거리는 어느 봄날이었을 것이다.

‘봄이 되어, 마을 처녀 순이는 몇 년 전 서울로 간 철수가 마냥 그리웠다.

주암에 핀 산벚꽃을 보고는 연정(戀情)을 못 이겨 이곳에 올랐다.

그리고 석탑 앞에서 기도를 했다.

탑 하나는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난 철수의 건강을 위해, 가운데에 있는 탑은 자신을 위해 부처님께 기도를 했다. 그리고….

순이는 세 번째 탑에서 고개를 숙이다가 얼굴을 붉혔다.

철수와 결혼을 언약하였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소망에 이르자 부끄러움이 들었던 것이다.

기도를 하면서 순이는 궁금했다. 다른 절에는 탑이 하나만 있다.

산북큰마을의 내화리 화장사 터에도 탑이 하나고, 월방산 봉서 마을의 바위 위 삼층석탑도 하나이다.

그런데, 유독 이곳만 같은 탑이 셋이나 있는 것이다.

탑은 부처를 상징한다고들 하는데, 왜 같은 부처를 셋이나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 다른 하나는 옛날 왕을 위해, 또 다른 하나는 힘 있는 권력가나 장군을 위해 세운 것은 아닐까.

하지만, 순이는 머리를 흔들었다.

자기에게는 탑 하나마다 이렇게 소망 한 가지씩을 비는 것이 딱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석탑들이 기도를 더 잘 들어줄 거라고 믿었다.

뒷집 옥이네도 이 탑에서 기도를 한 덕에 집 안에 어려운 일이 해결되었다고 했었다.

그래서 지금 간절히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순이는 철수를 생각하며 천천히 탑 주위를 돌았다. 그리고 봄을 맞은 금천을 바라보았다.

그때였을까.

저 멀리, 금천 변에 심어진 느티나무에서 까치가 무리를 지어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갑자기 이 산 저 산에 핀 산벚꽃잎들이 바람에 몰려왔다.

꽃잎들은 탑 주변으로 모여 들면서 순이의 발아래 떨어졌다.

순이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 봄이 지나면 그리운 철수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다짐했다.’

몇 년 전, 이 탑들을 배경으로 마을 젊은이들이 양복을 입고 찍은 흑백 사진을 보았었다.

한껏 뽐을 내던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순이가 그토록 기다렸던 철수가 있지는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곳 도천사지 삼층석탑이 있던 자리에 서면 언제나 알 수 없는 그리움과 마주한다.

그것은 순이가 철수를 그리워하는 연정(戀情)과 같은 것이다.

천 여 년 전 우리 선조들이 우리 지역에 국가 보물로 지정될 만큼 빼어난 아름다움을 지닌 석탑을 마련하였다는 자부심과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겨진 석탑에 대한 흠모에서 비롯된 그리움이다.

그리움에는 기도가 필요하다.

그리움을 승화하는 힘은 기도이기 때문이다. 순이가 철수를 위해 기도했듯이 말이다.

그 기도에는 우리 모두의 그리움이 깃들여져야 한다. 그래서 도천사지 삼층석탑은 우리의 연정(戀情)이어야 한다.

저 아래, 주암에는 지금 산벚꽃과 진달래가 화려하다.

이제 이곳 도천사지 옛 터에도 저와 같은 봄날이 깃들기를 염원한다.

어디서 산까치 한마리가 후드득 날아올랐다.

금천(錦川) 물빛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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