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6-04-17 오후 06:02:50

                   독자칼럼자유기고게시판

전체기사

커뮤니티

공지사항

독자투고

직거래장터

자유게시판

결혼

부음

뉴스 > 독자칼럼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외롭고 높고 쓸쓸한

2014년 02월 28일 [주간문경]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대구지검 상주지청

ⓒ (주)문경사랑

 

토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공군에 입대한 아들이 휴가를 나왔다. 건강한 모습이었다. 아침 식사를 한 뒤 미리 약속한 산행을 함께 했다. 휴가 때마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계획했었다. 처음에는 뮤지컬을 관람했고, 지난번에는 서울의 북촌(北村)에서 하룻밤을 보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문경읍 당포마을의 성주봉을 등반하기로 한 것이다. 수석 한 점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다소곳이 앉아 있는 형상인데, 큰 바위와 소나무들로 조화롭게 이루어진 산봉우리들이 언제나 볼만하다. 작지만, 운달산이 서북으로 뻗어 내린 운달지맥의 당당한 산이기도 하다.

삼월을 앞둔 휴일의 날씨는 완연한 봄이다. 개울가의 꽃가지에는 어느새 꽃망울이 무수히 달려 조만간 꽃을 터트릴 기세다. 문득, 이 마을의 옛 이름이 화지동(花枝洞)이었음이 떠올랐다. 화지는 꽃(花) 가지(枝)를 이른다.

조선시대 문인으로서 이 마을에 살았던 옥소 권섭은 자신이 거처하던 집의 이름을 화지장(花枝莊)이라 짓고, 마을을 신선이 사는 선계와 같다고 하여 화지동천(花枝洞天)에 비유했다. 장(莊)의 이름을 화지장이라고 한 것은, 곧 뒷산의 이름이 신향산(新香山)으로 향(香)을 썼기 때문이라고 화지장기(花枝莊記)에 자세히 적었다.

절 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위로 이루어진 대슬랩 구간이 나타났다. 밧줄 없이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경사의 높은 암벽구간이다. 한 마디로 은산철벽(銀山鐵壁)이다. 옥소 권섭은 그가 지은 화지십평(花枝十評)에서, ‘폭우가 세차고 질풍이 불어와 항아리가 엎어질 정도가 되면 절벽에 순식간에 짧고 긴 수십 개의 폭포가 생긴다.’ 라고 묘사했다. 이어서, ‘남들은 힘들게 금강산에 올라가서 기이함을 외치지만, 나는 집에서 하루 종일 구경한다.’ 라고 폭포가 일어나는 경관을 한껏 치켜세웠다. 글로 지은 풍광이 그림 그리듯 눈에 선하다.

성주봉의 첫 봉우리 이름은 수리봉이다. 밑에서 올려다보는 정상 바위의 모습이 독수리 머리와 부리를 영락없이 닮은 까닭이다. 오른쪽 봉우리는 독수리의 날개에 해당되고 대슬랩인 큰 암벽은 몸통이 된다. 지역의 어느 산악회에서 정상에 안내판과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그곳에서 당포마을, 옛 화지동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멀리 주흘산과 백화산, 포암산 그리고 월악산이, 가까이는 단산과 대미산 등 이름 없는 산들의 모습이 보였다.

“마을이 아늑하게 보이네요.”

휴가 첫 날을 함께 한 아들이 산 아래 옛 화지마을을 굽어보고 하는 말이다.

옥소 권섭은 화지장기에서, 온 마을이 감나무가 숲이라고 했다. 그리고 가을이 되어 감이 붉어지면 마치 무릉도원 같다고 했다. 또한 소나무 숲으로 맑은 바람이 저절로 일어나 여름에는 시원하고, 눈 속의 풍경은 즐길만하다고 하였다.

그는 금강산을 비롯하여 전국의 명소를 두루 유람하면서, 시와 문을 짓고 그림을 그렸다.그래서, 자연과 풍광을 대하는 안목이 누구보다도 높았다. 하여, 이곳에 화지장을 지어 구곡(九曲)을 경영하며 수(壽)를 누렸다.

지금, 그가 찬탄했던 화지마을의 풍광들은 그때와 다르다. 들에 가득했다던 김매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이를 구경하던 아이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바람소리에 섞여 들려오던 종소리는 마음이 닫혀 들을 수 없다. 지팡이를 짚고 건너던 내(川)도 그때처럼 맑지 않다.

산을 내려와 마을길을 걸었다. 들과 계곡, 얕은 언덕들이 보였다. 그가 지팡이를 짚고 건너던 내가 저기였던가. 붉게 물들었던 감나무가 저 고목인가. 여기가 그곳이었는지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하지만 부질없다. 옥소 권섭이 가고 없는 데 누가 이곳을 마땅히 경영한단 말인가. 그가 품었던 풍류의 격이 높았음은 분명하지만, 자뭇 그가 없어 외롭고, 그때의 풍정(風情)을 찾을 수 없어 쓸쓸한, 하여 외롭고 높고 쓸쓸한 화지동이다.

그때, 수리봉이 눈 안에 들어왔다. 한 여름 폭우라도 몰아치면 길고 짧은 수십 개의 폭포가 금방이라도 생길 듯 여전하다. 그리고, 그가 지녔던 문장과 풍류의 격처럼 높고 높은 모습이다. 그래, 너로 하여 이곳은 여전히 화지동일 수밖에 없구나. 아들의 손을 잡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화지동천을 나왔다.


010-9525-1807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주간문경을 읽으면 문경이 보인다.”
- Copyrights ⓒ주간문경.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간문경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주간문경

 

이전 페이지로

전체 : 0

이름

조회

작성일

전체의견보기(0)

 

이름 :  

제목 :  

내용 :  

 

 

비밀번호 :  

 

!!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개인정보를 유출하는등 법률 및 신문사 약관에 위반되는 글을 삼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게시물에 대한 민형사상의 법적인 책임은 게시자에게 있으며 운영자에 의해 삭제되거나 관련 법률에 따라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실시간 많이본 뉴스

 

더 새롭게 아름답게 찾아온 ‘2

문경시 점촌점빵길 빵 축제 특별

문경시 베트남 까마우성 계절근로

문경시장애인주간이용시설 장애인

점촌 원도심에서 제2회 점촌점빵

영순면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정기회

문경시보건소 찾아가는 감염병 예

문경교육지원청 중등 신규 및 저

문경시보건소 심뇌혈관질환 예방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문경사무소

창간사 - 연혁 - 조직도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구독신청 - 원격

 상호: 주간문경 / 사업자등록번호: 511-81-13552 / 주소: 경상북도 문경시 점촌2길 38(점촌동) / 대표이사: 남정현 / 발행인 : 남정현/ 편집인: 남정현 / 청소년보호책임자 : 남정현
제호: 인터넷주간문경 / 등록번호: 경북 아00151 / 종별: 인터넷신문 / 등록일 2010.10.28 / mail: imgnews@naver.com / Tel: 054-556-7700 / Fax : 054-556-9500
Copyright ⓒ (주)문경사랑.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