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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재(書雨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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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02일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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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점촌1동 산악회 | ⓒ (주)문경사랑 | | 이른 아침에 일어나 어제 읽다 덮어 두었던 책을 펼쳐보았다. 이는 절집과 고택 등 그 이름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어느 스님이 풀고 엮어 지은 것이다. 정감 있는 옛 건축물에 대한 길지 않은 단문, 자세하면서도 어렵지 않은 설명들에 마음이 더하여 며칠 째 읽고 있는 중이었다.
낯선 한자어의 이름들 속에 ‘춘우재(春雨齋)’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이것은 절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예천군 용문면에 있는 17세기 권진이라는 선비가 살았던 상류사회의 민가에 붙여진 이름이다.
저자는 책에서 “‘ㅁ’자형 안채와 세 칸짜리 사당, 흙담 고샅길이 잘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우리 전통 옛 정원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춘우(春雨)’는 말 그대로 봄비이다. 그래서 그 이름을 보고, 주인이 안채 누마루에 앉아 마당에 촉촉이 내리는 봄비를 한가로이 바라다보는 여유로움이 떠올랐다.
문득, 비(雨)라는 어감에서 유안진 시인의 ‘안동’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눈비도 글 읽듯이 내려오시며/ 바람도 한 수 읊어 지나 가시고…”
시인은 시에서, 옛 선비들이 반듯하게 앉아 또박또박하게 읽거나, 몸을 좌우로 흔들며 글 읽는 것을 마치 눈비 내리는 형상에 비유한 것이다.
그렇게 방안에서 한참 글을 읽다보면, 눈비는 선비가 읽는 소리에 이끌려 운율을 같이하며 내리게 마련이다. 아니 글 읽는 이가 바깥 풍경에 도취되어 눈비 오는 간격에 맞춰 소리를 내게 되는지도 모른다. 글이 눈비가 되고 눈비가 글이 되는 물아일여(物我一如)인 것이다. 그래서 글과 비가 하나가 되는 ‘글비’라는 말이 만들어진다.
그랬다. 이른 아침 책을 읽으며 봄비, 즉 춘우(春雨)라는 단어에서 글비, 즉 서우(書雨)라는 글귀를 얻어 보았다.
하지만, 단순히 ‘글비’만으로는 부족하다. 서까래를 얹어 그 위에 멋진 기와를 올렸더라도, 기둥이 받쳐주지 않으면 집이 될 수 없다.
글비, 즉 서우 뒤에 붙여질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이름을 완성하고 그 이름의 용처를 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齋)를 붙였다. 재는 독서와 사색하는 공간의 이름 뒤에 붙이는 접미사이다. 그리고 이는 예로부터 가족의 휴식 주거 공간, 관원들의 업무 공간, 기숙사 등의 이름 뒤에 붙이기도 한다. 하여 얻은 이름 하나가 서우재(書雨齋)이다. 글을 읽는 서고(書庫), 즉 도서실의 이름이다.
그 이름이라면, 누구나 그곳에 들러 방안 가득 내리는 글의 비를 맞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옛 사람의 지혜와 삶의 양식 같은 보슬비, 한여름 격정 같은 소낙비, 가을의 낙조를 닮은 실비, 스산한 겨울 관조하는 듯한 느낌의 잔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글비에 젖어들 수 있다.
이미지는 때로 형식의 지배를 받게 마련이다. 좋은 상호에서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고, 좋은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거주하는 집과 일을 하는 공간, 잠시 쉬어가는 누각이나 정자에도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이 담긴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 이름과 함께 자신을 공간에 일치하여 스스로를 다듬고자 애쓴 것이다.
며칠 전 어느 이로부터, 휴대폰에 저장된 아내를 호칭하는 이름이 ‘왕후마마’로 입력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내 휴대폰에 저장해 둔 아내의 호칭이 생각났다. ‘그미’였다. 나도 너도 아닌 3인칭, 그녀의 옛말이다. 당장 바꾸었다. ‘우리 복덩이’라는 순 한글 다섯 자를 또박또박 눌러 넣었다.
그래서일까. 요즘 매일 ‘복덩이’로부터 복음(福音)을 듣고 있다. 형식이 실질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실질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지역의 이름이 소중하고 그 유래를 알게 되면 더욱 정이 도타워 지는 것이다. 이름은 형상에 숨결을 불어넣어 생동(生動)하게 한다.
어쨌든, 서재를 갖게 되면 부를 수 있는 이름이 하나 생겼다. 서우재(書雨齋)이다. 그때를 위해 잘 갈무리해두어야겠다. 참, 안동이라는 시에서 시인은 바람이 시 한 수를 짓도록 했다. 그러나 바람은 머물지 않는다. 바람은 지나가게 마련이다. 지나가는 오늘, 방 한가운데 앉아 머무는 공간의 이름을 지어 봄이 어떨지. 어찌 아는가. 바람이 전하는 시 한 수를 엿듣게 될지 말이다.
010-9525-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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