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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휴일

2013년 02월 08일 [주간문경]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점촌1동 산악회

ⓒ (주)문경사랑

 

휴일이었다. 가까운 이들과 점심을 하면서 몇 잔의 술을 마셨다. 흔치 않은, 겨울 정오의 소담한 자리였다. 그리고 집에 들어왔다.

안해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방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무엇을 할까 하다가 혼자 거실에 앉았다. 언제나처럼, 분주하고 소란함 뒤에 오는 것은 적막함이다.

들떴던 마음과 취흥은 한낮의 고요에 떠밀려가고 있었다. 어린 시절, 밖에서 놀다 집에 들어와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안을 보았을 때의 공허함이 떠올랐다.

눈을 감았다. 수돗물 내리는 소리와 인기척이 간간히 들릴 뿐 조용했다. LP판을 집어 들었다. 조용필의 음반이었다.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바늘을 내렸다. 다소 둔탁한 잡음이 들리면서, 이윽고 옛 향수가 깃든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사라져 가는 흥(興)을 붙잡아 몇 소절을 건너뛰며 따라 불렀다. 그렇게 몇 곡을 따라 불렀을 터다. 술 때문일 것이다. 그래, 분명 술 탓이다. 언제부터였는지 내 노래에 물기가 고여 들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러는 사이, 잦아드는 울음과 함께 어깨가 들썩이는가 싶더니 결국 고개를 묻고야 말았다.

한동안 그렇게 있었다. 언제 왔었는지, 안해가 휴지를 내밀었다. 그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가 아버지 우는 걸 보면 어떡하라고 그래요.”

아버지. 아, 그랬다. 내가 한낮에 이렇게 울음을 우는 것은 아버지, 아버지 때문이었다. 조용필의 음악을 따라 부르면서, 나는 방에서 책을 보는 아들의 나이가 되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지금의 나처럼 낮술을 마시고 이 자리에 앉아 있었을 터이다. 술을 즐겨 하시던 아버지는, 가끔 휴일 낮에 술을 드시고는 방에서 혼자 주무시곤 했다. 텅 빈 집에서 그렇게 누워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안쓰러워하면서도 마뜩치 않았다.

모처럼 술을 마신 내 모습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졌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몰랐었다. 술을 마시고 잠을 자는 아버지가 안쓰럽다는 생각만 하였지, 당신이 왜 그렇게 고단한 모습으로 있는지를 몰랐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고 알고 싶지 않았다.

당신이 자신의 몸보다 훨씬 더 큰 세상의 짐을 혼자 짊어지고 있으리라고는 그때는 몰랐었다.

갓 스무 평 정도의 작은 집이었지만 그것으로 우리는 더 넓은 우주를 가지고 있었음을 정말 몰랐었다. 우리의 부족함을 꾸짖고 ‘매’를 대기도 하였지만 속은 얼마나 애타고 있었을지는 짐작도 하지 않았다.

주는 사랑에 고마워하기보다, ‘당신은 우리 아버지이고 어른이니까 다 그런 거지.’라고 속으로 항변하였다. 그런 마음들이 더러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했었다. 더구나 그런 행동에 대하여, ‘그래, 부모가 자식한테 해주는 게 세상의 이치 아니냐.’라고 스스로 합리화까지 하였으니 말이다.

건네주는 휴지로 눈물을 닦았다.

생각하면, 아버지가 우리에게 주었던 그 많은 혜택, 아니 당신이 짊어진 짐으로 우리가 보호받았을 그 공간의 안락함과 정신의 성장들이 은혜가 아닌 당연한 ‘세상의 이치’라고 항변했던 그것을 이제 내가 항변 받는 입장이 된 것이다.

그때 아버지의 그 자리를 지금 온전히 물려받고 있다. 또 눈물이 났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주고 있어도 당당할 수가 없다. 내가 주었으니 너도 내놓으라고 요구할 수가 없다.

이미 내가 아버지에게, 당신이 준 것들은 세상의 이치라고 항변했기 때문에 이게 은혜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속절없이 세상의 이치대로 흘려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울음 우는 것은 그 세상의 이치가 원망스러워서가 아니다. 삶이 주는 고단함을 한 잔 술로 하루를 달래셨던 아버지, 낮술에 취해 주무시던 그 아버지에게 다가가 ‘아버지 힘드셨죠.’ 라며 따뜻한 눈으로 손 내밀지 못했던 어리석음이 미워서이다. 늦은 뉘우침이 원망스러운 것이다.

‘자식은 효도하려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는 옛말이 맞았다.

이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것은 부모를 여윈 세상의 모든 아들딸들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이렇게 겨울 어느 한 낮 당신을 생각하며 울음을 우는 이것이 당신을 위한 유일한 헌사(獻辭)이다. 더 이상 울음은 나오지 않는다.

이제 당신께 고백할 말이 있다. 마음을 가라앉히며 가만히 되뇌어 본다.
“아버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아니 그것으로 부족하다. 더 할 말이 있다.

“당신은 더 없이 훌륭했습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그래, 이 말이다. 내가 정말 가슴에 두었던 말은 이것이다. 그것으로 되었다. 족하다. 당신도 고마워 할 것이다. ‘그래 됐다. 아들아.’라고 말이다.

창밖엔 당신이 가꾸었던 홍매화나무가 눈에도 꿋꿋하다. 그리고 당단풍나무도 성성(星星)하다. 곧 설날이다. 당신을 위한 성찬을 기꺼이 지어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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