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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의 높은 뜻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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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대장 운강 이강년 선생 향사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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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9월 11일(화) 12:19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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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문경사랑 | | 의병대장 운강 이강년 선생 향사가 10일(음 7월 24일) 오전11시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운강선생 기념관인 의충사 사당에서 유림과 후손 및 관계 기관단체장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봉행됐다.
이날 향사에서 고윤환 문경시장이 초헌관, 탁대학 시의회의장 아헌관, 홍시락 문경향교 부전교가 종헌관을 맡아 헌작했고, 집례는 문경향교 총무장의 정윤종씨가 맡았다.
운강 이강년 선생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낙인(樂仁, 樂寅), 호는 운강(雲岡), 아버지는 기태(起台)인데, 지난 1880년(고종 17) 무과에 급제해 절충장군행용양위부사과(折衝將軍行龍衛副司果)로서 선전관(宣傳官)이 되었으나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당시 명성황후가 일본군에 의해 학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1896년 1월11일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는데, 이때 일제 앞잡이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과 순검 이호윤(李浩允), 김인담(金仁覃) 등 3명을 체포해 농암장터에 운집한 군중 앞에서 처단했으며, 유인석 의병부대의 유격장으로서 문경, 평천, 조령 등지에서 활약했다.
한일신협약으로 한국군대가 해산 당하자 영춘(永春)에서 큰 규모의 의병부대를 일으켰고 풍기, 문경, 단양, 연풍, 영월, 죽령 일대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격파했으며 소백산, 일월산 일대에서의 일본군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큰 전과를 거두었으나, 1908년 6월4일 일본군 수비대에 체포돼 같은 해 서울의 일본군 헌병사령부로 압송이 돼 교수형을 선고받고 10월13일 처형됐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국민장이 추서됐으며 문경시는 순국의 높은 뜻을 기리어 해마다 사당에서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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