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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서기

2012년 03월 30일(금) 18:10 [주간문경]

 

 

↑↑ 허운 이창녕
가은읍 출생
전 점촌초등학교장

ⓒ (주)문경사랑

 

상큼한 봄 냄새가 해맑은 봄빛을 타고 어느 샌가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서고 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칙칙하고 두꺼운 추위들이 춘분을 지나면서,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뭍 생명체들에게 봄기운을 가득 충전시키고 있습니다. 부지런한 아낙네들은 봄나물을 뜯으며 봄을 만끽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초로의 사람들은 봄은 왔어도 작년 보다 못해진 기운에 남다른 애환을 느끼곤 합니다. 옛날 같았으면 지나쳐 버릴 이야기도 왠지 서운하게 들리고,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나 열정도 예전 같지는 않은 게 사실입니다. 동작이 느려지면 성질도 좀 느긋해 지면 좋으련만 성질은 아직도 모가 있으니 백수주제에 예전처럼 대접을 받겠습니까?

오늘 아침에 집사람의 느닷없는 이야기에 조금은 놀랬습니다.
집사람이 저 보고 홀로 서기 연습을 하라네요.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기막힌 말만 돌아옵니다.

40년 동안 찍소리 안 하고 밥해 주었으니 자기도 이제는 아들네 집으로, 딸네 집으로, 동생 집으로, 훨훨 좀 다닐 테니 알아서 밥해먹고 살려면 홀로서기 연습을 하라네요.

당장 오늘 아침부터 밥하는 법도 배우고 반찬 만드는 것도 배우고 세탁기 돌리는 것, 렌지 사용법 등을 차차 익혀 두라고 합니다.

“나는 그런 것은 못하지……."

一言之下에 거절을 하고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하니 피식 웃기만 합니다.

“아들한테 딸한테 가려면 밥해주는 할마이 하나 구해주고 가소”

“당신 제주 끗 구하슈”

“구하면 나중에 딴 소리 하기 없어?”

“연금만 내 통장으로 들어오면 딴 소리 할일이 없네요.”

어허! 살다보이 벌써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되는가 싶어서 기분이 좀 이상하네요.

물론 농으로 주고받은 이야기지만 말이 씨가 된다고 불원간에 나한테 닥칠 일임은 자명한 것 같습니다. 지금 일본은 퇴직 이혼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신혼 이혼보다도 더 심각한 것이 황혼 이혼이요 별거 생활이다.
집사람은 언제나 같이 한다는 것을 기정사실화 했고 또 그렇게 40년을 살아 왔는데, 갑자기 홀로 서기라는 말을 들으니 조금은 심각해집니다.

젊어서는 떨어져 살아도 젊은 혈기로 다 극복이 되지만 늙어서 떨어져 산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고 수명을 단축하는 일입니다. 나이 들어서 사는 것은 오직 밥 권력으로 버티는 것인데, 늙은이 혼자 밥을 해 먹는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지요.

안노인들이야 영감님이 있든 없든 먹고사는데 큰 걱정이 없겠지만 혼자 사는 영감님들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이제까지 내 그늘에 아내가 묻혀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생각해 보니 내가 아내 그늘에서 편하게 지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두드러지지 않았고 내세우지 않았지만 소리 없이 내조한 40년 세월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니 아내에 대한 소리 없는 고마움이 가슴을 여울지게 합니다.

“나는 오늘 점심 모임이 있어서 나가니까 점심밥은 렌지에 데워서 잡사요”

연습을 해보라는 뜻이요 의도적으로 연습을 시키려는 것임을 알고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은 애당초 잡아나야지 어 하다보면 쟁기 놓치고 소 잃는 꼴 나기가 십중팔구거든요.

그러니 초장에 확실하게 해두는 것이 무병장수에 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홀로서기란 아내의 말이 뇌리에 남아있는 숙제 문제처럼 개운하질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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