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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할머니의 용서와 사랑

2012년 02월 11일(토) 11:30 [주간문경]

 

 

↑↑ 허운 이창녕
가은읍 출생
전 점촌초등학교장

ⓒ (주)문경사랑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어느 누가 가늠하고 점칠 수 있겠습니까? 미래를 내다본다는 예언가들도 짐작할 뿐이지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 인간은 종교가 있든 없던 기도할 때가 있는데, 그 기도의 끝에는 반드시 건강하게 해달라는 주문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건강을 이야기하는지는 다 아시겠지요?

사람이 살면서 안 아프고 살면 좋겠으나 아파도 아는 병으로 아프면 괜찮지만 불치의 병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저 역시 암이란 병마에 걸려서 아직도 그 덫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의술의 힘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 병상의 맞은편에 74세의 할아버지께서 새 식구로 들어오셨습니다. 키도 크고 제법 멋도 풍기시지만 병수발을 위해 함께 오신 할머니께는 굉장히 고압적인 자세로 주종(主從)간의 사이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간헐적으로 치매증세도 보이는 할아버지께 할머니는 투덜거리면서도 시중을 들어주시고 계셨습니다. 저하고는 워낙에 나이 차이가 많아서 뭐라고 말씀도 별로 나누지를 못했습니다. 병상의 어색한 하루가 지나면서 나보다는 집사람과 할머니는 가까워 졌고 할머니는 집사람과 나에게 푸념식의 흉허물을 털어놓으시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참으로 드라마 같은, 49년 동안 꼭꼭 매어놓았던 탄식과 한의 보따리였습니다.

할아버지는 49년 만에 돌아오셨고, 함께 사신지는 4년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가평이 고향인 할아버지는 결혼하여 첫 아들을 낳고 첫돌이 되기도 전에 군대를 가셨고, 몇 년 만에 휴가차 잠시 고향엘 들렀다가 둘째를 임신시키고는 소식이 두절되었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49년 간 온갖 허드렛일과 행상, 품팔이를 하며 아들들을 키우고 교육을 시켜 오셨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생면부지의 타향에 시집와서 고난과 역경으로만 점철된 질곡의 49년이었습니다. 자식들 훌륭하게 잘 키워내고 두 다리 뻗고 편히 쉬며 살려했는데 어느 날 병든 몸만을 달랑 이끌고 할아버지가 돌아왔다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군에 입대하면서 부대 근처의 처녀를 속여 다시 장가를 갔고 세 명의 자식들을 낳고 교육시키고 출가까지 시키면서 살아왔는데 나이 들어 병이 들자 후처가 온갖 구박을 하며 끼니도 잘 챙겨주지 않아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할머니를 찾아 오셨다고 했습니다.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누가 과연 그 같은 상황에서 남편을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만 할머니는 다니시는 교회의 목사님 말씀 때문에 할아버지를 용서하고 받아들이셨답니다.

"하나님께선 무조건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 고 하셨으니 "안 그러면 내가 죽어서 하나님한테 혼날 것 아냐" 라고 하시네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너무도 당당하기만 한 할아버지를 보자 분노가 솟구쳐 오르기도 했으나, 할머니의 그 온전한 믿음과 당당한 실천 앞에서 그렇지 못한 내게 밀려오는 부끄러움을 잠재울 수 없었습니다.

신께선 아마도 진실한 믿음과 용서와 사랑이 무엇인지를 이 노부부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셨던 것이 아닐까? 집사람과 나는 병상에 있는 동안 할머니를 통해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 것 만 같았습니다. 할아버지를 치매병동으로 옮기시든 날 할머니께서 내손을 잡으시며 하시든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합니다.

“양반은 병(病)나아서 좋은 일 많이 하시오. 댁이 한 테도 잘해주시고…….”
두 분이 늦게나마 따뜻한 온기를 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사랑에는 두 가지 근본적인 소임이 있는데 주는 것과 용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가슴 속에서 쓴물이 되어 올라와 눈물과 함께 아프게 삼켜야했던 아픈 상처들도 용서하면 치유됩니다. 용서는 사랑의 시작입니다. 고맙습니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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