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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재(活齋)

-활재집 국역출판기념학술대회에 부쳐-

2025년 11월 21일(금) 17:08 [주간문경]

 

 

↑↑ 정창식
문경문화원 부원장
갤러리 문경공간-아름다운선물101 대표
법무사

ⓒ 주간문경

 

며칠 전 문경문화원 다목적실에서 활재종회 주관으로 ‘활재집 국역출판 기념학술대회’가 열렸다. 약 200명을 수용하는 대회장 안은 만석으로 몇몇은 자리가 없어 서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이구(李榘)는 17세기 전반기에 우리 지역에서 활동했던 유학자다. 자는 대방(大方)이며 호는 활재(活齋)다.

활재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병자호란 이후에 외가인 지금의 산북면 대하리로 이사를 하여 우리 지역과 인연이 되었다. 그는 향시와 별시에 합격하였으나 과거에 뜻을 접고 지역의 유자(儒子)로 평생을 살았다.

활재는 벼슬하지 않고 향리에 지내며 처사(處士)적 삶을 살았으며 사람들은 그를 산양처사로 불렀다. 그가 살았던 지금의 산북면 대하리가 당시에 산양(山陽)현에 속한 연유이다. 지금이라면, 산북처사로 불리었을 것이다.

그는 퇴계의 학문을 궁구하였다. 퇴계의 이기이원론에 입각한 주자 철학에 철저하였는데, 그러한 학문적 입장은 당시 영남지역의 유학자들이 주장하는 논지와 일치하였다. 그래서 남인 계열의 영남의 많은 유생들이 그의 사상에 동조하였다.

활재가 38세 되던 효종 1년 경인년(1650년)이었다. 당시의 집권세력은 인조반정에 성공한 서인들이 중심이었다. 서인들은 그들의 학문적 정통을 성혼과 이이에 두었는데 이들을 문묘에 배향하고자 하였다.

이때 영남 유림을 중심으로 반대 상소를 하게 된다. 영남 유생 900명이 연명으로 상소문을 올리는데, 상소문을 작성한 이가 바로 활재였다. 이는 당시 조선시대 퇴계학파에서 차지하는 그의 학자적 위상을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의 이러한 현실 참여적인 유자의 삶과 사상적 투철함은 후대에, 그의 절친한 친구 구학재(溝壑齋) 권구의 증손자인 청대(淸臺) 권상일로부터 그를 흠모하는 시가 바쳐진다. 청대 권상일의 시다.

“우리 영남에 이름난 선비들 많았는데/ 산양처사로 불리는 현인이 있었네. 남겨진 집터에 고목나무 한그루 있어/ 말 매어 두고 당시의 일을 물어본다.“

활재는 목재(木齋) 홍여하 와도 가까웠다고 한다. 목재는 영순면 율곡 사람으로 허백당 홍귀달의 후손으로 과거에 급제하였다. 역사서인 동국통감제강, 휘찬여사를 지은 인물이다. 그와 문장에 대해서 논하였는데, 활재는 ‘문장은 살아 있는 사물이다’라고 정의했다.

문장은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고 때로는 솔개처럼 하늘을 날고 때로는 물고기가 뛰어오르는 것 같아야 하는데, 즉 활발발(活潑發)하게 생동감이 있어야 함을 역설했다. 그는 당호를 활발재(活潑齋)로 지었다. 그의 호가 활재(活齋)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돌이켜보면, 활재가 살았던 시대에 지금의 산북면과 산양면을 중심으로 한 우리 지역은 안동 등지와 비교하여 영남 유림에서 변방에 가까웠다. 그런 면에서 그가 목재 홍여하, 구학재 권구 등 지역의 유자들과 교유하며 학문을 궁구함으로써 영남 유림을 대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주목해 볼 일이다.

활재는 42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활재보다 조금 뒤에 활동한 식산 이만부는 그의 짧은 삶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절절한 심정으로 애도하였다. 그리고 100여년이 지난 1786년 식산(息山) 이만부, 청대 권상일 등과 함께 근암서원에 배향되었다. 그곳에는 이미 우암(寓庵) 홍언충, 한음(漢陰) 이덕형, 목재 홍여하, 사담(沙潭) 김흥민 등이 모셔져 있었다.

활재문집은 8권4책이다. 이번에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이를 두 권으로 나누어 국역 출간하였는데, 어느 후손의 노력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무릇 선조의 뜻을 기리고 헌창하는 일은 마땅한 후손의 도리임이 분명하나, 그 일이 지역문화의 고양과 발전의 디딤돌이라면 정말 가치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회장을 찾은 지역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활재 선생이 우리에게 주는 울림이 무엇인지 되새겨 본다.

주간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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