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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고 간소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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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1일(화) 17:16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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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정창식
문경문화원 부원장
갤러리 문경공간-아름다운선물101 대표
법무사 | ⓒ 주간문경 | | 마당에 어지럽게 뒹구는 나뭇잎들을 보면서 시간의 빠름을 새삼 인식하는 요즘이다. 문득, 법정스님의 글이 떠올랐다. 스님은 글에서, 우리들이 지나온 허구한 그 세월 속에서 과연 내 몫의 삶을 제대로 챙겨왔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계절이 가을임을 강조했다.
얼마 전이었다. 심어놓은 들깨를 거두려고 밭에 갔었다. 시내에서 15분여 거리에 있는 밭은 퇴직 이후부터 직접 돌보고 있다. 밭농사를 대신 짓는 이가 있어 그동안은 관심을 두지 않은 밭이었다. 그러나 밭은 퇴직과 동시에 휴경지가 되었다.
밭을 돌보는 이가 손을 놓아 버린 것이다. 농촌에 농사짓는 이가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직접 농사를 짓기로 한 것이다. 묵힌 밭이 풀로 덮인 산으로 변한 모습을 보고서 도저히 그냥 둘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였다. 주변의 말을 듣고서, 가장 먼저 시도한 작물이 들깨였다. 안해와 고랑을 만들어 들깨 모종을 심었다. 들깨 모종이 풀보다 더 자라기를 소원했다. 그리고 바쁜 일상을 핑계로 한동안 돌보지 못했다. 그러나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농작물, 아니 들깨가 어찌 되었는지 엄청나게 자라 있었다. 풀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 듯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해 첫 들깨 농사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러나 초보 농사꾼의 운은 그까지였다. 거두는 시기를 맞추지 못해 수확은 예상을 크게 밑돌았다. 그리고, 올해는 작년의 운을 믿고서 모종 양을 2배 정도 더 늘렸다. 지난해처럼 밭을 그냥 두었는데, 어느 날 밭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온 밭이 풀로 뒤덮여 들깨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한여름의 풀을 만만히 본 업보와 천생의 게으른 결과임을 알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진리임을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허겁지겁 며칠 동안 풀을 제거하고서야 간신히 들깨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때, 자신의 무지와 게으름을 만회라도 하듯, 밭 한켠에 배추 백 포기를 심었다. 배추는 물이 필요한 작물이어서 물주기가 난제였으나 아침마다 직접 와서 물을 주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살뜰히 비료와 농약도 때에 맞게 주기로 했다.
얼마 뒤 들깨를 거두려고 밭으로 갔다. 가장 먼저 눈길이 간 것은 들깨가 아니라 배추였다. 다행히 배추는 잘 자라고 있었다. 제법 속이 차고 일부는 결구가 진행 중인 것도 있었다. 어쩌면 처음 짓는 배추도 첫 들깨 농사처럼 운이 좋기 때문이라는 자각이 들었다.
더구나, 배추 수확을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했기 때문에 미리 결과를 예단하기에는 이른 것이다. 농사에는 운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았던 것이다. 안해와 함께 들깨를 털면서 그나마 이 정도라도 수확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들깨를 거둔 뒤에 속이 꽉 찬 배추를 기대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음도 함께 감사했다.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법정스님은 그의 글 ‘단순하고 간소한 삶’에서 가을이 주는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무들이 지녔던 잎을 미련없이 떨쳐버리고 있는 것은 단순히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일만이 아니다. 새로운 삶을 위해 묵은 것에 결별하는 소식일 수도 있다.”
어쩌면, 농부가 농작물을 거두는 것은 단순한 자연의 질서에서 결별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닌 듯했다. 다가오는 봄에 씨를 뿌릴 희망과 함께 새로운 삶을 위한 묵은 것과의 결별에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묵은 것을 떨쳐버리지 않고는 새 것은 돋아나지 않는다.”
스님의 말처럼, 새롭게 돋아날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들깨와 남은 배추를 거두어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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