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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송(THE CHANT OF ME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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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식의 '창이 있는 덕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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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9월 22일(월) 17:07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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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정창식
문경문화원 부원장
갤러리 문경공간-아름다운선물101 대표
법무사 | ⓒ 주간문경 | | 성당에서 신부님의 강론을 들었다. 신부님은 어느 신자에게서 받았다는 짧은 글을 우리들에게 읽어주었다.
“동네에 외지 사람들이 갑자기 몰리는 날이 있어요. 저는 일부러 그들의 편의를 위해 차를 멀리 주차합니다. 작은 사랑을 실천하여 기쁩니다.”
신부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소소하지만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준 모습에 공감한 것이다. 신부님의 말이 이어졌다.
“이분은 사랑을 실천한 것이 맞아요. 그런데, 이웃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칭찬하지 않을 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살펴보면, 우리들은 선행에 대해 보상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그때에 칭찬이나 선물을 받지 않았다는 마음에 집착하게 되면 고통일 수 있겠다. 다시, 신부님의 강론이 이어졌다.
불교에서는 집착하는 마음이 모여 괴로움을 만들어내며 여기서 벗어나는 것이 도(道)라고 했다. 이를 위해 팔정도(八正道) 즉, 정견(正見)과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등 여덟 가지의 실천덕목이 있다 한다. 그래서, 불교는 수행의 종교이며 아상(我相)의 너머에 있는 지혜를 으뜸으로 한다.
육바라밀의 마지막 단계가 지혜바라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시와 인욕 그리고 수계의 생활을 통해 정진하면 선정에 들게 되는데, 이때 발현되는 것이 지혜인 것이다. 불교 수행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깨달음인데, 결국 그 깨달음의 결과는 지혜로서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 가능하다고 한다.
어쩌면, 신부님이 방금 전한 어느 신자의 작은 선행은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출발인 셈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미소한 웃음과 함께 소소한 박수를 보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생활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기에는 미흡할 수 있다.
얼마 전이었다. 우연히 티벳불교에서 내려오는 자비송(THE CHANT OF METTA)을 읽게 되었다. 첫 문장을 접하고는 끝까지 읽게 되었다.
“제가 증오에서 벗어나기를! / 제가 성냄에서 벗어나기를! / 제가 격정에서 벗어나기를! / 제가 행복하게 지내게 하여지이다.”
일종의 만트라 같은 주문처럼 느껴지는 글이었다. 그 기도의 대상은 나에게서 시작되어 부모와 가족, 이웃과 모든 생명있는 존재로 확대되었다. 마치 내 안에 있는 증오와 성냄 그리고 격정들이 사라져, 다른 존재들까지 모두 행복해지는 듯했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함으로 얻는 평화와 다를 수 있겠지만 스스로 보듬는 기도와 같은 노래였다.
신부님의 강론이 끝나고 미사는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카톨릭 고유의 자비송이 불리워졌다. 신부님이 먼저 불렀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이어 신자들이 따라 불렀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결국, 주님으로부터 받은 자비는 싹이 틔어 이웃으로 전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비는 우리를 집착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강 같은 평화와 행복으로 이끌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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