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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고향은 어디에 있는가?

2026년 09월 22일(화) 17:20 [주간문경]

 

 

↑↑ 김정호
신한대학교 행정학과 명예교수

ⓒ 주간문경

 

추석이 다가오면 마음 한구석에 고향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어릴 적 추석은 기다림의 계절이었다. 고향집 마당에는 가족들이 모였고, 어머니의 전부치는 냄새 등 음식 냄새가 집 안 가득했다. 객지에 나갔던 형제와 친척들이 모이면 조용하던 집은 금세 사람 사는 소리로 넘쳐났다.

문경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서울로 진학한 1970년대 후반, 추석에 집에 내려오는 길은 전쟁과도 같았다. 도로는 3번 국도로만 내려 올 수 있었던 시절, 당시 서울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지정된 날에 버스표를 예매 못하면, 콩나물시루 같았던 통일호 야간열차를 타고 김천에 도착해 점촌역 오는 새벽 열차로 갈아타고 밤을 꼬박 새우며 내려왔던 기억들. 함께 오르내렸던 그 친구들과 만나면 그 시절의 고생스러운 귀향 이야기는 행복한 소재로 바뀐다.

그러나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이제 부모님은 모두 세상을 떠나셨고, 예전처럼 꼭 찾아가야야 할 고향 집도 없다. 명절이 되어도 고향에 내려갈 특별한 이유가 예전만큼 많지 않아 자연스럽게 고향을 찾는 횟수가 줄어 들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고향은 더 자주 마음속에 찾아온다.

점촌의 어느 골목,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던 그 길, 친구들과 뛰어놀던 장소들, 부모님의 모습과 그 목소리….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 들이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작년에는 추석 당일 판교에서 문경까지 KTX-이음 열차를 경로 우선으로 운 좋게 왕복으로 끊어 가족들과 문경새재를 걷고,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 찾았던 진남교에 있는 매운탕 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딸과 사위에게 고향과 부모님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하지만 올해는 예매 시작 시간에 조금 늦었더니 기차표를 구하지 못하여 고향 방문을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여러 형태로 고향 모임에서 고향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문경에 내려가지 못하더라도 고향 분들을 만나면 고향을 만날 수 있고,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면 고향의 시간을 다시 불러 올 수 있다. 멀리 여행을 떠나서라도 고향 친구들과 함께라면 우리는 고향의 정서를 다시 찾아 올 수 있다.

지난 8월 하순, 문경 출신 ′58년 개띠 친구 16명이 함께 백두산을 다녀왔다. 멀리 중국 땅 백두산까지 갔지만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의외로 고향 이야기였다.

“그때 문경에 이런 일이 있었지.” “그 친구는 지금 어떻게 지내나?” “얼마 전에는 OO 선생님이 돌아가셨지.” 백두산 천지를 보면서도 우리의 마음 한편에는 문경의 풍경이 있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백두산을 다녀온 친구들의 모임 카톡방에는 한 친구의 이런 글이 여행 후기 끝부분에 올라왔다.

‘이제 우리는 내년에는 종심(從心)이라는 나이에 접어든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순수했던 영혼은 세상살이에 찢기고, 사랑했던 것들을 상실하고, 상처투성이가 되면서도 친구들은 성숙함으로 익어가고 있다. 그 어떤 것도 신나는 일이 드물어져 가는 나이에 접어든 우리들, 순수했던 시절의 친구들과 백두산 천지 감동의 기운을 수시로 호출하며, 함께한 사진작가 친구의 멋진 기록과 함께 이 여행은 지친 삶에 큰 활력소가 되었다. 고향 친구들과 함께한 귀중한 추억에 감사하고 사랑한다 친구들아~^^’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고향을 자주 찾지 못하는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향은 꼭 찾아가야만 만날 수 있는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 고향이란 지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함께했던 사람들과 공유하는 기억의 공간일 수도 있다.

올해 추석에도 아마 많은 문경 사람이 고향을 찾을 것이다. 누군가는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누군가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문경으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고향을 자주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괜찮다. 고향은 마음속에서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매달 재경문경시산악회에 가거나, 고향 친구들과 어울리면 고향을 만날 수 있고,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면 고향의 시간을 다시 살아갈 수 있다. 멀리 여행을 가서도 문경 친구들과 함께라면 우리의 고향은 그곳에 있었다. 이번 백두산 여행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주었다.

주간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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