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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용유회(亢龍有悔)

2026년 10월 02일(금) 17:19 [주간문경]

 

 

↑↑ 정창식
갤러리 문경공간-아름다운선물101 대표
법무사

ⓒ 주간문경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이미 스무여 명 남짓의 사람들이 강의를 듣고 있었다. 교실에는 시민명륜학교 양재동 교장선생이 명심보감을 수업하고 있었다.

문경C미로타운 3층의 시민명륜학교에서는 명심보감과 장영진 선생의 고사성어, 전경자 선생의 소학집주 등이 월, 수, 목 등 주 3회씩 오후 2시에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민명륜학교는 지난해 작고하신 고영조 전 문경시유림단체협의회장이 1995년에 처음 시작하였다. 명심보감, 소학, 동몽선습, 논어, 맹자, 격몽요결 등 고전 과목 등의 강의는 많은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이끌었다. 한때 백여 명의 시민들이 수강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 열기와 호응도가 얼마나 높았는지 짐작이 된다.

이렇듯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호응에 힘입은 시민명륜교실은 2011년 시민명륜학교로 바뀌었다. 지난해 3월 제29기 개강을 시작으로 문경C미로타운 3층에 새 교실을 마련하게 되었다. 늦었지만, 학교로서의 기본 틀을 갖출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다행이다.

돌이켜보면, 이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고(故) 고영조 전 교장선생의 품과 의지가 큰 몫을 하였음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 그는 농사직설을 지은 태촌 고상안 선생의 후손이며 지역 유림을 대표하는 유학자였다. 문경시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택 만산재에서 선비의 삶을 지향하며 오롯이 살아온 그는 평생을 시민들에게 옛 고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이에 매년 수십여 명의 선비를 배출해 올 수 있었다.

​ “위사필궐(圍師必闕)은 적을 포위할 때 반드시 한 군데 정도는 도망갈 수 있도록 ….”

교실은 양재동 교장 선생의 열띤 강의로 열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수강생들은 다양한 고전에 나오는 고사와 성어들을 자유자재로 펼쳐내는 그의 강의를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모두 자세를 바로 하고 있었다.

선생은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하여 지역을 대표하는 서예가로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특히 동암체라고 명명한 그의 한글 서체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항용(亢龍)은 제일 높이 있는 용으로서, 가장 잘 나가는 위치에 있을 때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이런 때에는 후회할 일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 항용유회(亢龍有悔)는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 욕심을 내어 서두르면 큰 화를 당할 수 있음을 경계하는 말이라고 한다. 잠용유호(潛龍有湖)는 아직 때가 되지 않음을 알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현용(見龍)과 비룡(飛龍) 등으로 상징되는 상황에 따른 경계들을 강조하였다.

​ 문득, 우리는 지금 어느 쯤에 있는지 궁금해졌다. 마치 정점에 이른 용이 된 것처럼 함부로 전횡(專橫)하고 있거나, 지나친 자기 연민으로 속절없이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의 진지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각자의 인생에서 어느 때에 잠용과 현용, 비용 그리고 항용의 시기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문득, 고전(古典)을 통해 선현들의 지혜를 배우고 있는 바로 이 시간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즉 항용(亢龍)의 때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은 고전에서 지난 삶을 반추하곤 한다. 그리고 지나온 삶의 궤적을 통찰함으로써 빛나는 지혜를 얻는다. 그때 마음의 평화와 함께 진정한 희열이 찾아온다. 그 지혜는 고요와 선정(禪靜)에서만 우러나오는 선물과 같다.

살펴보면, 세속의 저 항용에는 후회가 따를 수 있지만, 고전을 배우는 항용 같은 바로 이 시간에는 내면을 살찌우는 성찰과 지혜만이 있을 뿐이다.

이어서 퇴계선생의 활인심방 실습과 한문 필사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수업시간이 참 재미있고 좋은 걸 배워서 너무 좋아요.”

​ 교실 문을 나서며 웃으며 말하던 어느 수강생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수업을 들어 봐야겠다는 마음을 내며 총총히 계단을 내려왔다.
#주간문경#독자칼럼#정창식#창이있는덕승재#항용유회

주간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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