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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도공 도천 천한봉 선생 영면…전통 도예 큰별 흙으로 돌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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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시 도예장…오정택 장례추진위원장 "우리에게 소중한 별 되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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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19일(금) 17:22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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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문경사랑 | | “어찌 이리도 빨리 우리 곁을 떠나십니까? 아직도 우리는 선생님께 배울 것도 많고, 닮아야 할 것도 많고, 해드려야 할 것도 너무나 많은데 참으로 야속합니다.”
오정택 문경도자기협동조합 이사장(장례추진위원장)은 지난 11월 2일 조선의 막사발을 완벽하게 재현해 낸 마지막 도공인 도천 천한봉 선생의 영결식에서 추모사를 하며 울먹였다.
국가유공자 장례절차에 따라 문경시 도예장으로 치러진 이 날 장례는 오전 9시 발인을 시작으로 문경새재에 있는 선조도공추모비에서의 노제를 거쳐 충북 괴산 호국원에 안장됐다.
우리나라 도예인을 비롯한 공예인들의 애도 속에 별 중에 별이 영면에 들어간 것이다.
이 땅에 선생을 기억하는 사람들 모두가 큰 슬픔에 빠져 이제 어디서 선생의 다정한 말씀과 인자한 얼굴, 아름다운 그릇을 볼 수 있겠냐는 참석자들의 반응이다.
고 도천 천한봉 선생.
△무한한 예술의 비색을 찾아
도천 천한봉 선생은 1933년 춘삼월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2021년 10월의 마지막 날 생을 마감했다.
대한민국 도예 거목이고 거장인 도천 천한봉 선생이 처음 도자기와 인연을 맺게 된 동기는 일제의 징용령에 의해 강제노동에 동원된 부친이 1945년 광복 이듬해에 고향인 문경 관음리로 돌아오면서 시작됐다.
고향에 돌아온 부친은 징용에서 받은 고역 때문에 이듬해에 작고했다. 이로 인해 천 선생은 14세 어린 나이에 소년가장이 되어 가족들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사점가마에서 잡일을 거들며 틈틈이 도예기술을 익혔다.
그렇게 밤낮으로 노력한 끝에 18세부터는 문경지역에서 이름있는 사기장으로 알려졌다.
처음 발물레를 시작했을 때 “이것이 바로 나의 천직이구나”라는 선생의 생각은 74년간 쉼 없이 삿된 생각 없이 오로지 그릇을 만들게 한 원동력이 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편리하고 쓰기 좋은 그릇의 출현으로 장작가마를 모두 외면할 때도 선생은 꿋꿋하게 도예장인으로서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먹고사는 문제가 기로에 섰음에도 불구하고 올곧은 그릇을 만들기 위해 흐트러짐 없는 삶을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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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문경사랑 | | 그 결과 일본에서도 재현하지 못한 이도다완을 재현하고 그동안 끊기다시피 한 우리의 차 문화가 이 땅에 복원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찻그릇은 소박한 아름다움이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하므로 서민생활자기만 만들어 오던 천 선생의 작품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불길과 흙을 벗 삼아 밟고, 비비고, 다듬고, 깎아, 영혼이 타는 가마 속에서 무한한 예술의 비색을 찾아 영혼의 갈증을 풀었던 선생으로 기억되고 있다.
2일 조선의 막사발을 완벽하게 재현해 낸 마지막 도공인 도천 천한봉 선생의 영결식이 열렸다.
△전통도자문화 60년간 계승
1995년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된 후 전통을 이어가는 장인으로 알려지면서 1999년부터 문경전통찻사발축제 개최의 산파역이 됐다.
그동안 주로 해외에서 작품 전시회를 열었으나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짐에 따라 1980년대 이후에는 국내에서도 80여 회의 전시회를 개최했다.
전시회의 수익금으로 도천장학회를 설립함과 동시에 지역봉사활동에 대부분 기부함으로써 ‘자랑스런 문경·점촌인상’과 ‘경북문화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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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문경사랑 | | 천한봉 선생이 사용하는 유약과 태토는 대부분 문경지역에서 채취해 사용했으며 이는 문경지역 민요가 갖는 특징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또한 도자기 소성은 전통망댕이가마에 적송만을 사용해 온 것이다.
이러한 전통도자문화를 60년간 계승해 온 노력이 인정돼 2006년에는 경북 무형문화재 사기장(흑유자기)으로 지정됐다.
생전에 40여 명의 문하생과 제자를 양성시키며 “기능은 반복에 의해 발전할 수 있지만, 인성이 좋지 않으면 결코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없다”고 강조해 왔다.
이렇게 한국 도자기 발전과 후진양성의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2005년과 2018년에 동탑산업훈장과 화관문화훈장을 각각 수훈했다.
일본 왕실의 화병과 차 도구를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준 공로로 2008년 11월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최초로 일본 문화훈장인 욱일쌍광장 훈장을 받은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편애하는 법 없이…
도천 천한봉 선생은 한평생 어느 누구도 편애하는 법이 없이 모든 사람을 사랑했다는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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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문경사랑 | | 그런 마음으로 평생 그릇을 빚어 온 것이 어쩌면 그릇 또한 사람을 만들게 했는지도 모를 것이라는 얘기다.
모든 사람이 선생의 그릇을 좋아한다는 말보다 더 큰 말은 없을 것이라고들 한다.
지난 10월 31일 0시 15분 생을 마감한 당대 최고의 조선다완의 거장 도천(陶泉) 천한봉(千漢鳳) 도예명장의 빈소 앞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 이철우 경상북도지사, 임이자 국회의원, 임종석 경상북도교육감 등의 근조기가 빈소 앞에 세워져 있었다.
또한 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 등을 다수의 여야 국회의원들이 조전을 보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 박권흠 한국차인연합회장과 박동선 이사장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보내온 수많은 조화들이 장례식장 입구와 통로를 꽉 메울 정도로 세워져 있었다.
오정택 장례추진위원장은 추모사를 통해 “한 사람이 태어나 생을 마감할 때는 마치 소우주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러나 선생께서 하늘로 돌아가 우리에게 소중한 별이 되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또한 “선생님의 빈자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비록 커지겠지만 선생님을 닮아 가고자 했던 우리는 선생님의 빈자리를 가득 채울 수 있도록 무한히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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