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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 세상읽기(15)-감염병과 역사발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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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12일(월) 15:30 [(주)문경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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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강성주
전 재경문경시향우회장
전 포항문화방송 사장 | ⓒ (주)문경사랑 | | 지난번에는 사람에게 닥친 감염병이 인간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알아봤는데, 인간이 키우는 가축에게 감염병이 퍼질 경우도 인간의 삶과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있었다.
1888년부터 10년간 아프리카에서 우역(牛疫) 바이러스가 극성을 이룬다. 사람은 해치지 않는 대신 농사 등에 쓰던 소들의 90%가 폐사하자,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이 폐허로 변한다. 소를 잃은 농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이어 난민(難民)이 되고 거주민들이 떠난 뒤 지역 사회의 붕괴가 잇따라 발생한다.
제국주의 특히 땅 따먹기에 심취한 유럽 열강들은 사람이 살지 않아 폐허가 된 아프리카를 그냥 버려두지 않았다. 1870년대에는 아프리카의 10%만이 유럽의 식민지였으나, 30년이 지나면서 아프리카의 90%가 유럽의 식민지가 됐다.
이 사이 유럽열강은 1884년 베를린에 모여 소위 ‘아프리카 분할회의’를 열고, 땅을 나누어 가졌다. 그 무렵 서구 열강들에 의해 그어진 직선(直線)으로 된 국경선은 지금도 아프리카와 중동에 남아있다. 역사와 현실을 무시하고 강대국들이 자의적으로 그은 국경선[경계선] 때문에 지금도 아프리카와 중동은 부족(部族) 간에 싸우고 종파(宗派)간에 다투면서, 피 흘리고 있다.
명(明) 멸망의 결정타, 페스트
1368년에 건국돼 300년 가까이 융성했던 중국 명(明) 나라도 감염병으로 결정타를 맞았다. 이미 가뭄과 기근, 부패가 만연하면서 나라가 기울기 시작했는데 페스트의 창궐로 왕조가 바뀐다. 1641년 중국 북부에서 북방의 이민족들이 퍼뜨린 것으로 보이는 페스트와 함께 가뭄과 메뚜기 떼가 닥쳤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20~40%의 주민들이 사망했다. 기록에는 가뭄으로 인한 흉작으로 먹을 것이 없어진 주민들이 전염병으로 사망한 이들의 사체를 먹기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인육(人肉)이 ‘먹고 나면 또 생각나는 고기’라고 하여 이를 ‘상육(想肉)’이라고 불렀고, 그 맛은 ‘양고기와 비슷’하며, 인체 부위별 약효(藥效)까지 기록하고 있다. 좀 끔찍하다. 이렇게 명(明)이 망하고 1644년 청[大淸國]이 세워진다. 청은 1912년에 망한다.
이제 현대로 넘어가 보자. 20세기의 큰 감염병은 스페인 독감(Spanish Flu)이다. 1918년 봄과 가을~겨울 등 두 차례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퍼진 독감으로 봄에는 큰 피해가 없었으나 가을의 2차 발병에서 피해가 커, 1,700만명에서 5,000만명이 사망했다고 집계됐다. 아시아에서는 인도에서만 1,000만명이 희생됐다. 세계적인 전쟁인 1차 대전의 사망자가 1,500만명인데 비해, 전쟁도 아닌 독감으로 인한 희생자가 이 정도라니 놀랍다.
이 독감은 발원지가 미국 캔사스(Kansas)주 라는 설과 유럽이라는 설이 갈리고 있다. 막바지에 이른 1차 세계대전의 마무리를 위해 유럽에 파견된(1918.4) 미군들이 유럽에 퍼뜨렸다는 주장이 있는가하면 전쟁의 피해에서 탈출한 유럽 피난민들이 미국으로 독감을 갖고 왔다는 설이 대립하고 있다. 마치 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원지에 대해 ‘중국은 부인하고 미국은 증거가 있다’고 싸우는 것과 비슷하다.
1차 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 패권국가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도 제1차 세계대전 참전국 언론들이 ‘전시(戰時)검열’ 때문에 독감의 발병에 관한 뉴스를 보도하지 못했지만, 당시 참전하지 않았던 스페인의 언론은 독감의 발병과 피해에 대해 자유롭게 보도한데서 ‘스페인’이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 이제 스페인은 누명을 벗었지만, 이름은 남아있다. 중국이 코로나-19 발병국가와 관련해 딱 잡아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1918~1919년 이 때에도 전 세계에는 마스크 열풍이 불었다. 당시 사진을 보면, 미국 프로야구에서는 관중은 물론 선수도 마스크를 쓰고 시합했고,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전차(電車)를 탈수도 없었고 일본 도쿄에서도 모두 마스크를 썼다고 기록돼 있다.
「전 국민 마스크 쓰기」 「사회적 거리두기」 등도 모두 100년 전 스페인 독감 시기에 도입된 것이다. 이 독감으로 일본에서는 25만여명이 사망했고, 식민지였던 조선에서도 14만명 정도가 사망했다. 인구 비례로 보면 일본의 사망률이 0.4% 인데 반해, 한국[조선]은 1.8%로 사망률이 일본의 4배가 넘는다.
1918년 11월 1차 대전이 끝나고, 전후 처리를 매듭짓는 <베르사이유 조약>이 1919년 6월 체결됐다.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침입으로 받은 피해도 큰 데다 미국으로부터 빌린 차관도 많아서 독일에 대해 천문학적인 전쟁배상금을 요구했다. 1,320억 마르크, 당시 독일 국민총생산의 2년 치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독일은 해외 식민지도 다 뺏긴다. 독일 국민의 자존심이 망가지고, 바이마르(Weimar) 정부는 재정 파탄에 빠진다.
이후 역사는 우리가 책에서 본대로다. 독일 국민들은 점차 우경화(右傾化)되고, 그 분위기를 타고 “강력한 독일”을 외치는 나치(NAZI)당이 집권하고, 1939년 독일은 다시 전쟁을 일으킨다. “빚 갚다 굶어 죽으나 전쟁으로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아진데 따른 것이다.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난다. (다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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