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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 세상읽기(13)-아베 총리(總理)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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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22일(화) 16:41 [(주)문경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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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강성주
전 재경문경시향우회장
전 포항문화방송 사장 | ⓒ (주)문경사랑 | | 일본은 내각책임제 국가여서 어떤 시절에는 총리가 너무 자주 바뀌는 바람에 깜빡하고 옛날 총리 이름으로 기사를 쓰는 기자가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사임한 아베 신조(安倍晉三, 1954년생)는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로 기록된다.
16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곤방장관이 새 총리로 취임했다. 아베는 2006년부터 2007년의 1차 재임에 이어 2012년부터 2020년 까지 2차 등 최장수 총리로 기록된다.
하지만 일본 언론에서는 그렇게 오래 하면서 뭔 업적을 남겼는지는 애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베 본인도 지난 8월 28일 그만 두면서 ‘헌법 개정, 러시아와 평화협정 체결, 북한 납치자 문제’ 등 주요 3가지 현안을 하나도 해결하지 못해 심히 가슴아프다고 말할 정도였다.
아베는 한국과 아주 깊은 인연이 밑바닥에 깔린 사람이다. 아베가 존경한다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 信介,1896~1987)와 5살 아래의 동생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1901~1975)는 형인 기시(岸)가 양자로 가면서 성(姓)이 달라졌지만, 사토(佐藤)가 본래 성(姓)이다. 둘 다 일본 총리를 지냈다.
기시는 2차 대전이 끝나면서 A급 전범(戰犯)으로 체포됐으나 3년 뒤 석방되고, 총리(1957~1960 재임)도 지낸다. 사토(佐藤)도 총리(1964~1972 재임)를 지내면서 1965년의 한일국교정상화, 일본의 비핵화 선언 등 공적으로 1974년 노벨평화상을 받는 등 활약이 많았다.
사토 전 총리, “조상 한국에서 건너와”
우리는 심수관(沈壽官)이라는 일본의 명문 도공(陶工) 가문을 알고 있다. 1598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전북 남원(南原)에서 끌려간 도공 심당길(沈當吉)의 후손인 이들은 지금도 규슈(九州) 남서쪽 미야마(美山)에 400년 넘게 마을을 이뤄서 살고 있다.
14대 심수관(본명:심혜길, 1926~2019)이 살아 있을 때인 1974년 봄, 총리에서 퇴임한 사토가 찾아와 차(茶)를 마시고 난 뒤 “수관씨, 몇 대째입니까?”라고 물어 “14대입니다”라고 대답하니 “저는 좀 더 짧을 겁니다. 당신네는 게이초(慶長, 1596~1615)때 왔는데 우리 선조는 그 뒤에 온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붓과 벼루를 청해 ‘묵이식지(黙而識之)’라는 휘호를 써주었다. 사토는 ‘묵이식지‘(말로 하지 않아도 알아줄 것은 다 알아주고 통한다) 이 한마디로 자신도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渡來人)의 후손임을 밝혔다.
아베와 한국과의 인연은 또 있다. 아베의 고조부(高祖父)는 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1850~1926)로 일본제국의 군인이었다. 오시마는 청일전쟁 발발 직전 일본군 여단장으로 8,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한양[漢陽]으로 진주해, 경복궁을 포위하고, 고종으로 하여금 갑오개혁(甲午改革, 갑오경장)을 받아들이도록 무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이 때 일본은 자신들에게 비우호적인 고종과 민비 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권력구조를 내각제로 바꿔서 친일적인 인사를 내각총리로 앉히고 경제구조를 일본에 유리하게 바꾸었다. 한일합방(1910) 15년 전의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고종 31년 6월 21일 “일본 군사들이 대궐로 들어왔다. 이날 새벽에 일본군 2개 대대가 영추문(迎秋門)으로 들어오자 시위군사들이 총을 쏘면서 막았으나 고종이 중지하라고 명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베의 고조부, 경복궁 침범 주역
오시마는 청일전쟁(1894~1895)에 여단장으로 참전한 뒤, 러일전쟁(1904~1905)에는 사단장으로 참전하고, 뒤에 육군대장으로 자작(子爵) 칭호도 받는다. 오시마는 고향이 조슈번(長州藩, 지금의 야마구치현)으로, 일본 우익의 정신적 지주이면서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운영한 서당인 쇼카손주쿠(松下村塾) 출신으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등과 함께 공부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의 손으로 처단된다. 체포된 안 의사는 여순(旅順)으로 옮겨져 재판을 받고, 순국(殉國)하는데, 그 때 일본 조차지(租借地)인 여순․대련(大連) 즉 관동주(關東州)의 행정 책임자 즉 관동도독(關東都督)이 바로 오시마(1905~1912 재임)였다. 이렇게 보면 아베 집안은 악연이 아니라 원수(怨讐)라고 해도 될 만큼 한국과 악연이 이어진 관계이다. 그 고손자가 바로 아베였다.
이런 바탕을 가진 아베는 한국과 괜한 감정싸움만 하다가 좋은 소리도 못 듣고 나갔다는 평을 듣는다. 현재로서는 우리나라의 문재인 대통령도 그런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자고로 못난 지도자가 인접한 나라와 사이좋게 지내면서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지 않고, 국민 감정을 자극해 국민들로부터 ‘인기 아닌 인기를 얻는다’고 했다.
지나간 과거를 갖고 싸울 일이 뭔가? 개인끼리도 옛날 일로 그러면 욕을 듣는다. 지도자는 국민의 시선을 미래(未來)를 바라보도록 이끌어야 한다. 아베와 문재인은 올바른 국정철학이 없고 역사의 교훈에 대해 깊은 성찰(省察)이 없다는 점에서는 서로 닮았다.
지도자의 철학 빈곤은 결국 국민의 마음에 상처를 남길 뿐 아니라 나라도 쇠락(衰落)으로 이끈다. 한국에서 현재 진행 중인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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