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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홍씨 선천공 어필각 중수 및 유품 봉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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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 투구 및 식기 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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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6월 29일(토) 10:06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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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문경사랑 | | 부림홍씨 선천공(宣川公) 어필각(御筆閣) 중수 및 유품 봉안식이 6월 22일 호계면 호계리 451번지 어필각 마당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부림홍씨 문광공파 중종이 주최하고 호계(선천공)종중이 주관한 가운데 고윤환 시장, 고우현 도의원, 김창기 시의회 부의장, 각 유림단체장과 회원, 부림홍씨 후손, 호계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국민의례, 경과보고, 홍진호 회장의 인사, 고우현 도의원과 김창기 시의회 부의장, 권대진 전 노인회장 등의 축사, 선천공 행장 소개, 유품봉안식, 영남대 홍우흠 명예교수의 ‘선천공 홍인걸 선생의 생애와 사상’ 주제의 특강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중수식을 가진 어필각은 홍인걸(洪仁滐, 1581~1639) 선생이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이 되었을 때 선조임금이 직접 써서 내린 66자의 서첩을 보관한 곳이다.
어필은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 한유(768~824)가 그 아들 부에게 “모든 사람을 독서를 통해 얼마나 자신을 향양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귀천의 지위가 결정됨의 진리” 깨우치기 위해 쓴 권학문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의 일부를 선조임금이 쓰고 아들 의창군 광이 서첩 말미에 발문을 썼다.
이곳에 보관되어 있던 선조임금의 글씨와 선생의 유품인 투구와 식기는 1999년 6월 문경새재박물관에 옮겨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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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문경사랑 | | 이날 봉안된 유품은 후손인 홍용락 교수(동아방송대)가 제작 의뢰해 기증한 선천공이 사용하던 모형 투구 1점과 식기 1점이다. 식기는 홍진식 도예가가 만들었다.
홍우흠 영남대 명예교수는 특강에서 “이 어필각에 보존되어 온 아름답고 의미심장한 어필의 메시지는 자자손손 부림홍문의 긍지요 영광인 동시에 영남사림이 함께 되새겨 볼 수 있는 역사적 담론의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진호 선천공 종중회장은 “호계 족친들의 어필 및 유품 보존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와 문경시의 보조로 퇴락해진 어필각을 거듭 새롭게 단장했다”면서 “우리 후손들은 본 어필각을 길이 보전하여 공의 충효정신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선천공(宣川公) 홍인걸(洪仁滐) 선생의 본은 부림홍씨(缶林洪氏)다.
조선시대 명신으로 대제학을 지낸 문광공(文匡公) 홍귀달(洪貴達) 선생의 고손으로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홍응상(洪應祥)과 해주최씨 사이의 삼남 중 맏이이다.
1581년 출생하여 25세에 무과 4등으로 급제해 선전관이 됐다. 선조임금은 문무를 겸한 공의 재능을 특별히 생각하어 어필 66자의 서첩을 하사했다.
1633년(인조11) 52세 때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공로로 임금이 어주를 내리고 품계를 높여주고 했으나 늙은 아버지가 계시므로 이를 미루어 사양했다. 이에 인조는 선생의 충과 효를 겸전한 마음을 칭찬하여 즉시 부자에게 당상관의 벼슬을 내렸다.
1636년(인조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임경업 장군의 입청(入淸)을 적극 도왔고 영남전운사가 되어 활동했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창주첨사겸방어사(종2품)로서 서로(西路)지역의 백성들을 보살피다가 1639년(인조17) 58세의 나이로 관직에서 세상을 뜨니 연변 각도에 운구를 호송하라는 왕명이 내려졌고, 고향 오정산 묘향원에 장례를 치렀다.
선생의 충과 효를 몸소 실천하고 청백리로서의 몸가짐과 조정에서서 직언극간한 태도는 세상에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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