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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와 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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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4월 28일(화) 16:54 [(주)문경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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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김 안 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문경대학교 석좌교수
한국자치발전연구원 원장 | ⓒ (주)문경사랑 | | 그리스의 고대 작가인 이솝(Aesop, 620?~560? B.C.)이 지은 ≪이솝 우화(寓話)(Aesop's Fable)≫라는 책에 ‘포도와 여우’라는 주제를 가진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잘 익은 포도가 달린 포도나무 밑을 지나던 여우가 마침 시장하던 터라 그 포도를 따먹기로 하였다. 그러나 포도가 약간 높은 가지에 달려 있어서 따먹기가 좀 힘이 들었다. 펄쩍 높이 뛰어도 닿을듯 닿을듯 하면서 닿지 못하여 도저히 따먹을 수가 없었다. 힘이 다 빠져서 포기한 채 아까운듯 포도를 쳐다보니 마침 까마귀 한마리가 나무 끝에 앉아 그 포도들을 맛있게 쪼아 먹고 있었다. 여우는 그 곳을 떠나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저런 시어빠진 포도는 까마귀 같은 천한 날짐승이나 먹지 나같이 고귀한 동물이 어찌 먹겠는가?” 참으로 이중인격적인 야비한 언행이라 할 수 있다.
어릴 때 일찍이 결혼을 한 시골출신의 친구가 있었다. 부인은 학교를 다닌 적이 없는 무학의 여성이었으나 그는 공부를 잘하여 서울에 있는 대학에까지 진학하였다. 그 부인은 시골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자녀도 셋이나 잘 키우고 있었다.
내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는데, 사이비종교에 깊이 빠졌다는 이유로 부인을 내쫓고 새로 다른 처녀와 정식 결혼식을 올렸다. 시부모를 잘 모셨고 자식도 잘 키웠으며 남편의 뒷바라지도 오랫동안 잘 했는데 이러면 되겠느냐고 했더니, “난 이제 그런 여자와는 살 수가 없네. 무엇보다 대화가 되지 않네.” 라고 답했다.
세월이 흐른 뒤에 보니 본 부인은 절에 들어가 비구니(比丘尼)가 되었고 장남은 신학대학을 나와 목사가 되었으며, 내 친구인 본인 자신도 목사로 돌아섰다고 한다. 모두가 괴로움을 잊고자 종교에 귀의한 듯하다.
또 하나 포도밭의 여우같은 실화(實話)가 있다. 젊은 시절부터 함께 어떤 학술단체에 관여한 절친한 친구가 있었다. 열심히 봉사․헌신한 덕택으로 나는 무난하게 부회장이 되고 회장까지 지냈지만 그는 좀 힘이 들었다. 반대파가 있고 경쟁자가 있어서 본인을 위시한 몇 사람이 무진 애를 써서 회장직에 올랐던 것이다. 그 조직은 회장을 역임하고 나면 자동적으로 고문이 되고 또 여러 행사에 참여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는 회장을 물러난 다음에는 전혀 그 조직의 활동에 참여하지 않아 좀 나오라고 권유하였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그런 데는 안가지.” 이 말을 들은 나는 너무 놀라고 섭섭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는 그렇게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조직의 장이 되고자 얼마나 애를 썼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졌는가? 후일 들어서 수필문단에 등단하여 문인들과 깊이 교유하며 외국에도 자주 나들이 한다고 한다. 그가 비하하는 억양으로 말한 ‘그런 데’를 나는 꾸준히 나가고 있다.
우리 주변에 보면 가끔 자기를 있게 해준 근본이나 은혜를 무시하고 현재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꾸어 처신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자기가 태어난 고향이나 모교가 좀 촌스럽고 후지다고 해서 인근의 좀 이름 있는 지역이나 학교로 바꾸어 말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부모형제나 조국까지도 멀리하기도 한다.
어떤 학자는 같은 사항에 대한 이론이나 주장을 정권이 바뀌고 자기를 중용하지 않는다고 하여 하루아침에 정반대의 논리로 바꾸는 참으로 비열하고 속보이는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뜻의 감탄고토(甘呑苦吐)나 권세와 이익을 좇아 수시로 바뀌는 세속의 인심을 의미하는 염량세태(炎涼世態)라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사회의 치사스런 단면을 잘 나타내고 있다.
진솔하고 정직하며 일관된 인간의 본성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한 없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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