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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과 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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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21일(금) 15:46 [(주)문경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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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김 안 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자치발전연구원 원장 | ⓒ (주)문경사랑 | |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인 기원전 6세기경에 제(齊)나라에 안영(晏嬰), 곧 안자(晏子)라는 유명한 재상이 있었다. 어느 해 초(楚)나라의 영왕(靈王)이 이 안영을 불러 기를 꺾어 놓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를 초청했다.
서로 대화를 하고 있는 데, 포졸들이 죄인을 묶어 지나가기에 왕이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물었더니 도둑질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으니 제나라 사람이라고 하였다. 왕은 잘 되었다 싶어 안영에게 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안영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회수(淮水) 남쪽의 귤을 회수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고 마는 것은 토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지만 초나라로 와서는 초나라의 풍토에 물들어 도둑질을 잘하는 것 같습니다.” 초나라 왕은 크게 부끄러워하면서 안영을 정중히 대접해 보냈다는 고사가 있다.
중국의 고전인《주례(周禮)》에 ‘귤유회의북위지(橘踰淮而北爲枳)’ 곧 ‘귤을 회수강을 넘어 북으로 가져가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고, 또한《안자춘추(晏子春秋)》에는 ‘강남종귤 강북위지(江南種橘江北爲枳)’, 즉 강 남쪽에 심은 귤을 강 북쪽으로 옮기면 탱자가 된다는 구절이 있다. 이들을 사자성어로 줄인 것이 ‘귤화위지(橘化爲枳)’, 또는 ‘남귤북지(南橘北枳)’ 이다.
귤은 밀감(蜜柑) 이라고도 하는 식품과일이고 탱자는 구귤(枸橘)이라고도 하는 약재로 주로 쓰이는 과일이다. 둘 다 운향과(芸香科)에 속하는 상록 활엽 교목(常綠闊葉喬木)이지만 따듯한 지역에서는 귤이 되지만 추운 곳에서는 탱자로 바뀐다.
후진국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선진국에 가서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고 돌아와 자기 나라에서 중요한 직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선진국, 특히 영국이나 미국, 프랑스나 독일, 또는 일본 등에서 이상적인 민주주의와 고도의 문화를 습득하고 다소 후진적인 자기 나라에 와서 집권을 하는 경우에 배운 대로 하지 않고 독재정치와 장기집권이라는 좋지못한 경향으로 흐르는 사례를 빈번히 볼 수 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선진국에서는 귤이었던 사람이 자기 나라에 와서는 탱자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이승만과 필리핀의 마르코스는 선진국의 훌륭한 민주주의 교육을 이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나라의 대통령이 되고부터는 사람이 달라져서 민주주의 대신에 독재정치를 선호하고 단임제 보다는 장기집권의 길을 걸었다. 귤에서 탱자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은 본인과 국가에 큰 불행을 초래하였으니, 두 사람 다 국민의 저항으로 대통령직에서 하야하고 미국으로 망명하였으며 거기서 죽음을 마지하고 말았다.
식물은 풍토의 지배를 받고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식물은 풍토를 변화시킬 수 없지만 사람은 자기의 환경을 변경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후진국 국민들이 선진국에서 유학을 한 훌륭한 사람을 지도자로 모시는 것은 낙후된 이 나라를 발전시키고 인권과 민주가 보장된 정치체제로 전환시켜달라는 여망 때문이지 돌아와서 혼자 오래도록 독재정치나 하라고 그러한 것은 아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식물이나 다른 동물과 달리 생활하는 환경과 활동하는 공간을 편리하고 유익한 방향으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다. 북쪽 땅에도 귤 나무가 자라고 귤이 생산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고 종자를 개량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남쪽의 문경에서 귤로 태어나 자라서 북쪽의 서울로 와서 각박하고 무정한 풍토에서 탱자로 바뀌어 질 운명으로 오래도록 살아왔지만 아직도 귤의 본질은 많이 남아있으며, 나로 인해 서울의 풍토도 조금은 순화되지 않았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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