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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장수 임금 영조와 건강관리(Ⅱ)

2015년 12월 08일 [주간문경]

 

 

↑↑ 엄용대
엄용대 한의원 원장<054-553-3337>

ⓒ (주)문경사랑

 

조선의 최장수 왕이자 52년 세월동안 왕좌에 머문 영조는 비록 여든이 넘도록 장수했지만 어릴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한약을 달고 산 너무도 체력이 약한 임금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각종 기록을 통해 살펴보면 영조의 체질은 특이한 데가 있습니다. 그는 83세에 세상을 뜰 때까지 인삼이 든 처방을 애용했습니다.

심지어는 말년 10년 동안 복용한 인삼이 100근이나 될 정도였습니다. 또한 소식(小食)을 즐기고 기름진 음식과 술을 피하는 등 절제된 식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소화 기능이 약한 소음인 체질이 아니고선 실천하기 힘든 식습관입니다.

영조가 앓은 질병은 대부분 소화력 부진이나 복통 등 한랭성 질환이었습니다. ‘골골백세’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체질이었습니다. 다만 궁궐 밖에서 생활하던 18세에 두창을 크게 앓은 것을 제외하면 본인의 판단과 선제적 대처로 질병을 예방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를 괴롭힌 질환은 산증(疝症)이었습니다. 경종 재위시절 왕세제였던 그는 산증으로 경연(經筵)을 자주 쉬어야 할 정도로 통증이 심했습니다. 산증은 한의학적 병명으로, 현대의학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하복냉통증후군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소화불량과 전립선질환이 복합된 것이며, 여성으로 말하면 생리통과 냉대하로 인한 자궁 하복통 질환을 의미합니다.

동의보감은 ‘산증은 부위별 분류에 따라 전음(前陰)에 배속하였는데 전음은 종근이 모이는 곳이며 종근이란 음부의 털이 나는 곳에 가로놓인 뼈의 위아래에 있는 힘줄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아랫배에 병이 생겨 배가 아프고 대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을 산증이라고 하는데 이는 찬 기운으로 인해 생깁니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영조는 “홍진 때 쓴 우황과 찬 약이 산증을 유발했다”고 회고하였고 ‘예전 같으면 여름에는 생냉물을 먹지 않았으나 요즘은 과인이 스스로 과식한 측면이 있고, 겨울이 되어서도 오히려 수족을 차게 하는 등 온몸을 두루 차갑게 했다. 평상시 과인의 처신이 몸을 차갑게 한 것이다’라고 생활습관 문제도 고백 하였습니다.

산증의 형태에 대해서도 ‘지금 복부는 손으로 만져보면 옆으로 횡단지기가 있는데, 의복이 단박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지금 여름에 덥다고 생랭(生冷)한 것을 과식한 소치’라고 밝혔습니다.

산증은 소변을 보기 어렵거나 참기 힘들게 해 영조를 계속 곤란케 했습니다. 영조2년 10월14일 승정원일기엔 ‘어릴 때부터 소변을 자주 보았는데 최근에는 더욱 심해져 하룻밤에 수차에 걸쳐 들락날락했다.

특히 요번 제사 때 초헌을 보는데 소변이 심히 마려워 실례를 할 뻔했다.’라고 곤혹스러운 경험을 밝혔습니다. 심지어 ‘소변이 방울방울 떨어져 고통스럽다’라고 고민을 털어놓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하였고, 영조는 찬 약물이나 생활습관에서 산증의 원인을 찾지만 동의보감은 이 병의 원인을 화병으로 설명합니다.

대체로 성을 몹시 내면 간에서 화(火)가 생기고, 화가 몰린 지 오래되면 내부가 습기로 차가워지며 통증이 심해집니다. 사실 영조도 자가진단과 달리 각종 스트레스로 인한 화병에 시달렸습니다.

앞에서 본대로 즉위할 때까지의 스트레스와 격화된 당쟁의 와중에서 신하들 사이에 끼여 자학적인 발언을 자주 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영조 7년의 기록엔 ‘만 가지 보약이 헛것이다. 내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 이와 같다’고 말하거나 영조 9년엔 ‘온갖 보약이 다 헛것이고 마음을 맑게 하는 것이 요방이다’라며 괴로운 심경을 표현했습니다.

대다수 왕이 선대왕을 여윈 슬픔에, 혹은 힘겨운 장례절차 와중에 건강을 잃어버린 반면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 사건 앞에서도 곡기를 끊거나 반찬 수를 줄이는 감선(減膳)을 하지 않았습니다.

삶을 이어가기 위한 에너지 보급과 권력투쟁을 철저하게 구분 짓고 살았음을 보여줍니다. 국가적 위기상황이나 신하들과의 갈등 때 반찬 수를 줄이거나 단식투쟁을 했지만 시간을 정해놓고 투쟁의 근본 목표에 부합한 것에만 충실했을 뿐 투쟁 그 자체에 매몰되진 않았던 영리한 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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