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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전원생활자

2009년 11월 09일 [(주)문경사랑]

 

신상현

서양화가
(주)신디자인 대표이사
펜션 예인과 샘터 대표


ⓒ (주)문경사랑 주간문경신문

저희 집 앞 파란색 함석 뾰죽지붕 집은 몇 년 전 비어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붕만 개량한 시골집이지요. 그러던 중 어느 겨울날 세입자가 들어왔습니다. 이런 시골의 빈집에 세입자가 든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지요. 더군다나 예쁘게 지은 전원주택도 아닌 허름한 농가에 도시 세입자가 든다는 것은 좀 특이한 경우입니다. 이는 곧 세입사연이 뭘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 합니다. 간간히 사람의 인기척을 느낄 수는 있었으나, 달마 또한 쉽게 사람을 잘 사귀는 체질이 아니였던지라, 한동안 무신경하게 지냈습니다.

동네 반장님께 들어보니 세입자는 자녀들을 모두 성취시킨 중년부부로서, 바깥양반의 직업은 당시 인근 건설현장 시공 감리단장으로 공사가 끝날 때 까지 거처할 수 있는 한시적인 임시숙소를 찾길레 마침 비어있던 옆집을 추천해 주었다는군요.

그분들이 이사 들어 변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넓은 마당 한가운데 간이 골프 퍼팅 연습장을 설치해 놓은 점입니다. 역시 도시인들은 어딜 가나 항상 골프가방을 싸들고 다니는구나 하였습니다. 저야 뭐 앞으로도 주욱 골프하고는 거리가 멀 작자이니 아무래도 관심이 덜했던 모양입니다. 골프니 승마니 하는 것은 분명 귀족 레포츠 일 것이니 마당쇠 달마의 레포츠인 빨래, 요리, 설겆이, 호미질, 삽질 등 뭐 이런 레포츠와는 분명 격을 달리 할 것입니다.

어쨌거나 잠시 머물다가 떠날 "한시형 전원 생활자"를 이웃에 두게 되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서로 안면을 트고 이야기할 기회가 왔습니다. 비교적 이미 굴러와 먼저 박힌 돌에 속하는 제가 먼저 초대를 해야 하는 것이 순서 임에도 게으른 저는 기어이 초대 순서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사람 좋고 인심 좋게 생기신 아주머님과 골프하고는 전혀 거리가 멀어? 보이시는 단장님 부부의 간이보금자리인 웰빙주택 에서 맥주를 대접받았답니다. 전형적인 도시생활자로 보이시는 그분들은 시골의 모든 것이 낯설고 또 신기하였을 것입니다. 푸세식 화장실에 적응하는 과정도 엄청난 사건에 속하며, 들판에 지천으로 나있는 토끼풀(네잎크로버)이 너무 신기해서 캐다가 온 마당에 심어놓고, 마당에 쉼 없이 올라오는 잡초는 이분들의 눈에는 모두 야생화에 속하며 냇가에 지천으로 널부러진 강자갈돌은 모두 훌륭하고 진귀한 수석(壽石)이였습니다.

강에서 주운 막돌들을 마당 한켠에 촘촘히 박아 화단을 만들고 비교적 잡풀? 들을 모아 화단경계 안쪽에 심어놓고 "수석과 화초"들의 오묘한 조화라시며 감탄해 하는군요. 달마는 사막에서 녹색풀 한포기를 발견하고 "심봤다~!" 하시는 분들을 만난 것이지요. 임자 제대로 만난 것입니다. -.-;;

제가 돌틈 사이에 지천으로 올라오는 씀바귀를 뽑고 있으면 그렇게 아름다운 야생화를 왜 뽑느냐며 도저히 이해 할 수없는 사람이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수시로 찾아오는 들고양이들에게 친구하자고 먹이를 나누어 주기도하며 오늘 찾아온 들 고양이가 어디에 보금자리를 틀고 있는지 그동안의 관찰내용을 연구논문처럼 좔좔 꿰고 계셨습니다. 마당에는 작은 웅덩이를 파고 물고기를 기르고 온 마당에는 고추며 토마토며 열무 쑥갓 땅콩 등을 심으셨습니다. 그리고 가을에 수확한 농산물은 같이 나누어 먹자며 기염을 토하셨습니다. 씀바귀를 뽑아낸 자리에 해바라기를 모종하였더니 왠지 키 큰 해바라기를 심는 것은 이웃 간에 단절을 상징 하는 것 같다 시며 서운해 하셨지요. 그분들을 "한시형 전원생활자" 로 규정지었으나, 또한 "준비된 예비 전원생활자" 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였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천방지축 견습 시골살이를 하시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는 오히려 그분들을 통해 현재 저의 전원생활을 뒤돌아봅니다.
달마는 과연 온전한 전원생활자인가?
도시적 생식 습관과 사고를 가진 무늬만 전원생활자로 어줍게 시골살이를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히려 이분들이야말로 앞으로 전원생활을 할 수 있는 진정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 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도시생활자가 어느 날 갑자기 단봇짐을 싸듯이 시골로 내려오는 일은 그것이 귀농이든 낙향이든 전원생활이든 성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갑자기 변화된 환경은 적응하기도 힘들거니와 시골향수가 아니라 이내 도시향수에 빠져버리게 되지요. 그만큼 도시가 주는 간편함과 편리함과 안락함과 쾌적함은 중독성이 강합니다.

도시란 다중의 편의를 행복의 가치로 발전하는 정교한 시스템 입니다. 그 시스템 속에서 도시인들은 거대한 기계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하나의 작은 톱니바퀴나 작은 부품의 역할도 반드시 필요하듯 자신의 역할과 조직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며 도시적 안락함=행복감 이라며 중독 되어갑니다. 그렇게 중독된 삶을 살다가 드디어는 일탈을 꿈꾸게 되고 때로 그런 시스템에 환멸을 느끼며 벗어나고파 합니다. 도시적 시각으로 시골을 바라보면 시골이란 비교적 정교한 시스템도 아니며 고도의 유기적인 조직을 필요로 하는 사회 또한 아닙니다. 그저 어머니 품처럼 고요한 편안함과 넉넉함이 있고 낭만이 있으며 황토 구리 빛바랜 멋과 자연의 풍성한 정서가 있습니다. 싱싱히 살아 숨쉬는 대지에 맑은 생명수는 계곡과 하천을 적시며 넓은 벌 동쪽 끝으로 고즈넉이 흘러갑니다. 그러나 그런 시골일지언정 그 속에는 도시 못지않은 고요 속 소란스러움이 있고 그림 같은 창밖의 전원풍경 속에는 치열한 삶과 노동의 현장이 있지요. 고달프고 힘에 겨운 일상들이 시지푸스의 신화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곳, 벗어나고파 하여도 벗어날 수없는 운명의 사슬로 끝없이 절망하는 곳이지요.

대자연의 경이로움과 풍요로운 얼굴은 항상 야누스와 같은 두개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두 가지 형상의 얼굴을 모두 다 사랑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그때부터 진정한 전원생활은 시작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시골살이를 시작한다고 모두 전원생활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철저한 계획과 준비기간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포용하는 여유와 넉넉한 마음이 아닐까요?

넉넉한 자연과 시골인심을 기대하는 마음 말고 자신부터가 먼저 넉넉해지는 마음 말입니다.

어느 날 넉넉하고 풍요한 마음은 머나먼 전설의 도시에 두고 오늘날 박 터지게 살벌하고 핏발선 눈으로 시골살이에 용맹정진 하는 한심한 달마의 모습을 보았기 말입니다.

- 가짜 전원생활자 달마 -

편집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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