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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줍기

2009년 10월 19일 [(주)문경사랑]

 

신상현

서양화가
(주)신디자인 대표이사
펜션 예인과 샘터 대표


ⓒ 주간문경신문

자연주의 작가 ‘밀레’의 그림에는 우리에게 널리 잘 알려진 ‘이삭줍기’란 제목의 그림이 있습니다.
전원의 풍경을 아주 서정적으로 그려낸 감동적인 명화입니다.
복제된 이 그림이 여느 시골 작은 음식점 같은 곳에 부적?처럼 걸려 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원작의 제작의도에 ‘이삭을 줍듯 부지런하고 살뜰히 살아 보아란 듯 살림을 일으키라는 다소 한국적인 정서가 더해져 있다’라고 확대해석 해도 명화를 모독하는 처사는 아닐테지요?
지금은 과거처럼 추수가 끝난 들녘에서 이삭을 줍는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지난 과거 우리네 들녘에선 이삭을 줍는 아녀자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벼이삭을 대표로하지만 사실은 모든 가을걷이를 끝낸 들녘에는 이삭이 떨어져 있기 마련입니다. 고구마, 감, 밤, 콩 등 1차 농산물은 1차로 주인이 수확해갑니다. 그리고 2차로 부칠 수 있는 땅 뙤기 마저 변변찮은 가난한 언저리 농민 아녀자들이 이삭을 줍습니다. 그러고도 빠뜨린 이삭이 있다면 아마 겨우내 들쥐나 다람쥐, 참새 몫으로 남겠지요?
달마네 집 근처에는 아름드리 감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감장수가 감나무 주인에게서 감나무를 통째로 삽니다. 그리고 감이 익을 무렵 품을 사서 수확합니다. 감을 따는 것이 아니라 털어 버립니다. 선홍빛 감이 바닥에 지천으로 떨어집니다. 내 감나무가 아니라 그런지 수확 하는 모습이 거칠기 짝이 없습니다.
떨어진 감을 주워서 상자에 담아 차에 싣고 썰물처럼 빠져나갑니다.
주변에는 깨진감, 터진감, 빠트리고 간 ‘이삭감’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감장수가 떠난 황량한 감나무 밭에서 이삭감을 줍습니다. 터진것, 깨진것, 상한것, 성한것 전부 주워 모읍니다.
쯪 쯪! 혀를 차며 덤불숲을 헤칩니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앙상한 감나무를 흔들며 지나갑니다.
한소쿠리 가득 담아 밤이 늦도록 혼자서 그 감을 깎습니다. 또다시 시작된 저의청승?에 마누님은 입을 빗죽거리구요. 깨진 것은 얇게 썰고 성한 것은 예쁘게 깎습니다. 장인(匠人)의 손길이 지나간 감은 모두 각자의 형태대로 예쁘게 다듬어져 질서 있게 도열합니다. 성한 감 만해도 두접(200개)이 넘습니다. 곱게 익은 선홍빛 감을 마루에 널어 말립니다.
마누님이 그 많은 감을 다 무엇 할 것이냐고 이죽거립니다.
“없어서 못 깎으니, 걱정일랑 붙들어 메시요~!” 라고 받아칩니다.
사실 이삭감을 주워 깎아 널었지만 끼니를 잇기 위한 ‘이삭줍기’는 아닙니다. 그냥 바닥에 널부러져 깨지고 버려진 감이 아까운 것이지요.
보고만 있자니 왠지 하늘에 죄를 짓는 것 같았지요.
귀한 먹거리들을 함부로 버리는 것은 하늘에도 감나무에게도 예의가 아니지요.
잘 말려 분을 내어 그 옛날 호랑이도 무서워한 ‘곳감’을 만들 작정입니다. 분이 잘난 좋은 놈으로다 골라 할아버지 제사상에도 올려야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겨울 간식거리로 나눠주며, 가난했던 아빠의 유년, 곳감 에 얽힌 전설 같은 이야기를 곳감 빼듯 하나씩 빼어 이야기 해주어야겠습니다.
어린시절 시골 달마네 최밭골 비탈 밭둑에는 큰 감나무가 스무 그루도 넘게 심어져 있었습니다.
들판의 가을걷이가 끝날 무렵이면 산모퉁이 비탈 밭가에선 또 다른 수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눈이 부시도록 지천으로 달린 저 붉은 감을 언제 다 딸까?
해마다 너무 많이 달리는 달마네 감은 언제나 소년에게 걱정이 앞을 가릴 뿐이였습니다.
해 걸이도 하지 않는 만년 풍년인 야속한 저 달마네 감!
대나무 긴 장대를 든 할아버지는 앞장을 서고 손자는 자루를 메고 함께 감을 따러 털래털래 밭둑 사이 오솔길을 걸어갑니다.
할아버지가 감나무 위에 올라가셔서 장대로 꺾어 따면 소년은 밑에서 그 감을 받아 자루에 담습니다. 짧은 가을햇볕은 이내 저물고 저녁이 되면 손이 시릴 정도로 춥고 바람은 찹니다. 할아버지는 감나무에서 내려오실 기척도 보이지 않고 하염없이 따서 내려만 주십니다. 소년은 시린 발을 동동 구르며 “할배요 언제 집에 가요?” 하며 감나무 위를 향해 소리치면, “조금만 더 있거라 요나무만 다 따고 가자!”고 하십니다.
사위(四位)는 적막해지고 소년은 감나무에서 달린 남은 감 갯수를 헤아리려 어둠과 씨름 합니다.
이윽고 할아버지와 소년은 언 손을 부비며, 어스름 저녁달과 감을 함께 등에 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등에 진 달은 은쟁반 처럼 차가웠습니다.
늦은 저녁을 먹은 뒤 온가족이 둘러앉아 감깎기에 몰입합니다.
감물이 손톱에 새까맣게 낄 때까지 몇날이고 몇일이고 밤이 이슥토록 깎습니다. 깎은감은 싸리 꼬쟁이에 엮어 답니다. 그렇게 말린 곳감은 두동 석동(한동은 백접)씩 되었습니다.
깎고 남은 감 껍질은 잘 말려서 다시 분을 내어 겨우내 영양 간식이 됩니다.
겨우내 언손을 호호 불며 논에서 썰매를 탈 때면 언제나 소년의 호주머니에는 감껍질이 불룩 하였습니다.
버릴 게 없어야 시골살림이 지혜로운 법입니다.
결국 곳감은 그렇게 만들어져 장날 팔려집니다. 곳감 생산자는 언제나 깎고 남은 껍질만을 부산물로 얻는 궁핍한 시골살이지요.
그런 유년기의 아련하고 고된 향수를 책갈피에 은행잎처럼 차곡차곡 지니고 살아온 달마입니다.
이삭감 주워 깎기는 저의 정신유산에 본능적으로 마누님께 늘 청승이라고 비판 받는 ‘함부로 버리지 못함’이 내재(內在)하고 있습니다.
버리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자란 까닭입니다.
깨어진 박 바가지도 늘 꿰메어 곡식을 담는 그릇으로 재활용 하시던 할머니의 손자입니다.
지금은 풍족하고 넘쳐나 한해 몇 조원씩 하는 음식물이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다고 하나, 아이러니 하게도 이 땅 이 지구촌에는 기아로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또한 지천으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쌀 아홉 말 가진 부자가 단 한 말 가진 자에게 “그 한말 내게 보태 한섬 채워 주게!” 하는 것이 인간의 욕심이라고 합니다.
내 비록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청승이 몸 속에 천형처럼 갈무리져 있으나, 한 번도 영양가가 부족하고 시대에 역행하는 덜떨어진 사고로 생각치는 않습니다. 아무리 ‘소비가 미덕(美德)’인 현대사회를 살아 간데도 달마에게는 근검, 절약하는 생활이 몸으로 전설처럼 이어졌습니다.
자연에서 배운 먹거리의 소중함은 또한 자연스런 깨침입니다.
달마는 반만년 농경사회를 살아온 농경민족의 후예임을 잊지 않습니다.
‘마음의 곳간’이니 쌓아도, 쌓아도 넘치도록 쌓아도 흉볼 이가 없으니 마음껏 욕심을 부려도 될 터입니다.
내일은 개울건너 산 아래에 있는 감나무 밑으로 또 이삭 감을 주우러 가야겠습니다. 버릴 수도 없는 욕심을 주워 곳간 가득 채워야겠습니다. - 감 깎는 달마생각 -

편집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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