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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숙

2019년 09월 21일 [(주)문경사랑]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문경문화원 이사

ⓒ (주)문경사랑

 

우리 방 다탁(茶卓) 위에는 묵직한 책 한 권이 놓여 있다. 오래되었다. 망년우(忘年友)인 서울의 최창묵 선생으로부터 선물 받은 “간송문화(澗松文華)”라는 옛 그림 도록(圖錄)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에서 발간한 것으로 조선 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의 그림이 실려 있다. 김홍도와 다른 화가들의 그림도 일부 있다. 매일 마다 한 두 점씩의 그림과 글을 눈으로 보거나 훑는다. 때로는 무심하게, 때로는 세밀하게 보기도 한다. 그러다 간혹 흥이 일 때에는 겸재의 그림에 감탄하기도 한다.

겸재는 그림의 구도와 화법(畫法)을 다루는 데 있어서 천변만화(千變萬化)의 재주를 지닌 듯하다. 그림의 대상에 따라 느껴지는 화풍(畫風)이 다양한데, 때로는 겸재의 그림을 보고 있음에도 착각을 하기도 한다.

‘월송정’이라는 그림에서는 화선지 가득 풍경을 그려 넣었으나 ‘망양정’에서는 왼쪽의 바다를 휑하니 비워놓았다. 강원도 삼척에 있는 ‘죽서루’는 절벽으로 된 높은 언덕 위에 있다.

죽서루를 그리기 위해 이를 가운데 화면에 배치하여 우측 끝까지 들여왔다. 화선지 중앙에 가득한 육중한 절벽 언덕이 생뚱맞고 부자연스러울 수도 있는데, 물 위를 흐르는 작은 배와 잘 어울려 보인다.

박연폭포를 그린 ‘박생연’(朴生淵)이라는 제목의 그림은 폭포와 주변 큰 암벽만을 클로즈업한 듯 화면에 가득하다. 화면 상단 절벽에 있는 정자 위 협소한 하늘의 여백이 수직 폭포의 장대함을 대변해주고 있다.

부채에 그린 도산서원 전경과 하늘에서 내려본듯한 부감기법의 금강산, 즉 ‘풍악내산총람’은 몇 번을 보아도 그냥 훑고 지날 수 없다.

이처럼 옛 그림을 감상하는 즐거움은 옛사람들의 와유(臥遊)에 버금가는 기쁨인 것이다.

얼마 전, 화가 신상국(申相國) 선생의 근황을 듣게 되었다. 그는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이며 문경예총 초대회장을 지냈다. 1980년대 볼모지나 다름없었던 지역 화단에서 국전 특선(2회)과 입선을(3회)하여 대한민국 대표 화가로 우뚝하였다. 우리 문경은 지역 문화에 크게 공헌한 공로를 인정하여 2001년 그에게 ‘문경대상 문화상’을 수여하였다.

그는 점촌중학교 미술교사로 봉직하였다. 여든에 가까운 지금에도 붓을 놓지 않는 현역 화가로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다가오는 9. 25. 초대전을 시작하는데,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루벤’에서 10. 1.까지 연다고 한다.

이번 전시회에서 출품된 그림은 서숙, 즉 조(粗)와 목화, 그리고 배꽃 등이 주된 소재가 된다.

“서숙은 오곡 중에 가장 낮고 천대받는 음식으로 서민들의 애한이 서려 있어요.”

예로부터, 서숙은 가난과 설움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척박한 땅에서 열매를 맺어 맛이 거칠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먹는 음식이었다. 지금은 거의 이 농사를 짓는 농가가 드물어 밭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그린 서숙은 가난과 애한 등 부정적으로만 느껴지지 않은 듯 했다. 가지에 주렁주렁 거꾸로 열린 서숙은 그 풍성한 양감과 황금색 색감이 어우러져 오히려 풍요로운 결실을 이미지화하는 것으로 보였다.

다시 보았다. 화면 가득한 서숙에서 아늑한 향수 같은 푸근함이 느껴졌다. 목화도 마찬가지였다. 가만히 보면 그의 그림들은 가을의 저 ‘서숙’ 처럼 가난과 설움, 그리고 애한이라는 부정적인 대상을 풍요와 기쁨 등 긍정적인 이미지로 치환하는 듯했다. 그것은 오로지 대상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 때문이 아닐까.

“오랫동안 탄광, 산동네, 서민, 일상의 풍경 들을 주로 그려왔어요. 이제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요. 이번 전시가 그런 기회가 되었으면 해요.”

가을이 익어가는 10월에는 문경문화원에서도 그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는 문경문화원 전시에서는 수십 년 간 그려왔던 작품들 위주로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겸재의 그림을 보는 즐거움 못지않은 기쁨이 그의 그림에서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그의 전시회를 고대해본다.

010-9525-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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