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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여기인(書如其人)

2019년 11월 08일 [(주)문경사랑]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문경문화원 이사

ⓒ (주)문경사랑

 

“죽봉(竹峰)선생이 발간한 월간지의 글씨를 보고 배웠어요.”

얼마 전, 제1회 문경문학관 초대전을 마친 우리 지역 원로 서예가이신 야은(野隱) 권대진 선생의 말이다. 그는 1927년 호계큰마을 선암마을에서 태어났다. 아흔이 넘은 고령임에도 그의 정신은 맑아 언어는 유장(悠長)하였고 지난 시절에 대한 에피소드는 소상하였다.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와 서화대전 등 서예 부분의 여러 권위 있는 대회의 입상을 통해 이미 우리 지역에서 그의 성가(聲價)는 드높다. 평생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 교육봉사부문에서 문경대상을 수상하였다. 2013년도에는 문경시 노인대학 학장과 대한노인회 문경시 지회장, 도덕성회복국민운동본부 문경지회장 등 지역사회에 공헌한 공로 등으로 영예의 문경대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한학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무엇보다 서예가로서 그 성가(聲價)를 높이고 문경문학관의 제1회 초대전을 성료(盛了)한 계기가 궁금하였다.

“어릴 때 집안의 백씨(伯氏)어른이 글을 쓰실 때 틈틈이 배우고 했어요.”

그런 인연으로 천자문과 명심보감 그리고 논어를 일찍 익힐 수 있었고 지금도 매 주 수요일 시민들에게 ‘논어’를 강의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서예의 가르침을 준 스승은 대한민국 서예의 대가인 죽봉(竹峰) 황성현 선생이다.

죽봉선생은 서예 월간지를 전국적으로 발간하였는데, 이는 그가 서예를 공부할 수 있는 방편이었다고 한다. 매 달 선생의 글씨를 쓰고 익혀 이를 우편으로 보내면 죽봉선생은 아낌없이 지도해주었다고 한다. 때로는 직접 찾아 가르침을 받기도 하였다.

1978년에 창립한 ‘관산서예’라는 서예동호회를 이끌어 볼모지였던 우리지역 서예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얼마 전 작고한 황규욱씨가 글씨를 참 잘 썼어요. 그때 그이도 관산서예에서 지도하였는데 나이는 저보다 어렸지만 제가 글씨를 배웠어요.”

그의 말에서 그의 품성이 느껴졌다. 겸양이 몸에 배인 듯했다. 얼마 전 마친 초대전에 대한 소회를 물어보았다.

“저는 그런 번잡한 것을 싫어해요. 그런데 문경문학관의 관장과의 인연 때문에 승낙을 했는데, 제 글씨보다는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더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의 호가 야은(野隱)인 것은 다 까닭이 있어서이다. 야은은 벼슬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선비의 전형적인 삶을 품고 있다. 은인하고 자중(隱忍自重)하는 겸양의 마음이 그의 심성을 형성하는 근간인 듯했다. 그가 가장 아끼는 작품은 ‘천자문(千字文)’과 주자(朱子)가 지은 ‘주자경제잠(朱子敬齊箴)’이다.

그리고 소장하고 있는 작품으로는 해공 신익희 선생이 직접 쓴 글씨와 우리 지역출신으로 동국대학교 총장을 지낸 퇴계당 권상로 선생이 지은 ‘김용사 설선당 중건 상량문’ 등으로 이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그는 이 소장품을 첫 초대전을 열어준 문경문학관에 기증하였다고 한다.

그에게 이 자리에 서 있었기까지 구십여 생을 어떤 마음으로 매진해왔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는 주저 없이 명료하게 말했다. 돈과 이익을 쫓지 않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다고 했다.

지금도 사무실을 방문하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한다고 한다. 건강의 비결로 규칙적인 생활을 꼽았다. 같은 건물에 거주와 서예 공간을 구분하고, 이층 옥상에 채소밭을 가꾸어 하루에 네 번씩 오르면서 먹을거리를 직접 가꾼다고 했다.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고 했다. 글씨는 그 사람과 닮아 있다는 의미다. 그림(畵)과 문장(文章)도 그러하다. 천자문(千字文)을 같은 글씨로 일필휘지한 정성도 그렇고, 이익을 취하지 않고 아끼는 소장품을 걸림 없이 내어주는 마음도 그러하다. 서여기인이 사실이라면, 그의 글씨에서 우리들은 겸양과 인애(仁愛)하는 그의 마음들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서여기인의 기회는 있다. 다가오는 11월 26일과 29일 문경문화원 전시실에서 시민들을 위해 다시 전시회를 연다고 한다. 이 가을 구십 노 서예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와유(臥遊)의 즐거움을 놓친다는 것은 정말 억울한 일이 될 듯하다.

(010-9525-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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