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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포

2017년 08월 22일 [(주)문경사랑]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문경문화원 이사

ⓒ (주)문경사랑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떫은 맛, 바로 그 맛이 우리 민족의 소박성 아닐까요.”

도천 천한봉 선생, 대한민국 도예명장이다. 한낮의 휴일, 나른함도 잊은 채 여든 다섯의 노인은 쩌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끊어지지 않고 막힘없는 말은 유장(悠長)에 가깝다. 그래서, 객인(客人)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명장의 당당함과 식견에 감탄할 뿐이다.

그의 살아온 이력과 혁혁한 업적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하여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될듯하다. 다만, 우리가 궁금한 것은 도자기 그릇을 만드는 그의 마음과 뜻이다. 예술가는 작품에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살펴보면 그의 그릇에는 백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분청과 칠기(漆器)류의 도자기가 많다. 분청은 귀족과 지체 높은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서민들의 일상에서 기능을 중시하는 소박함을 특징으로 한다. 칠기도 그렇다.

그의 전시장 벽에 유려한 서체의 액자가 걸려있다. ‘계종순업(繼從舜業)’이다.

승려이면서 독립 운동가였던 다솔사의 효범스님이 그에게 직접 써준 글씨라고 했다.

‘순임금이 질그릇을 만들어 백성의 생활을 이롭게 했듯이 그 전통을 잘 이어 이로운 그릇을 만들라’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말을 한 사람은 또 있다고 한다. 봉암사 주지였던 도범스님이 그에게 “보기 좋은 것 보다는 쓰기 좋은 것을 만들어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단 음식보다 익기 전 감의 떫은맛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나라의 민족성인 소박함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믿고 있다. 그의 작품은 이렇듯 보기 좋은 그릇보다 소박함과 서민적인 감성을 드러내는 작품들이 많다.

“물항아리(水指) 중에 가운데가 찌그러진 모양이 있는데 처음부터 도공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에요.”

움푹 들어간 감자를 연상하게 하는 이 물항아리는 조금 부족한 듯 보이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질그릇 같은 느낌의 태토와 유약이 친근미가 있다. 이 물항아리는 도공이 불을 때기 위해 무심히 던진 장작에 맞아 생긴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어긋난 그릇이 예술적 의미에서 하나의 경치(景致)가 되고 말았다. 이런 연유를 모르고서 도공들이 완성된 형태에 일부러 눌러 인위적으로 모양을 내고 있다고 한다.

입의 넓은 화병도 왕족이나 양반의 시야로 보면 파격이며 볼품없는 모양새다. 그러나, 굽과 몸통보다 넓은 입에서 서민들의 거침없는 상상력과 활달함이 느껴지곤 한다. 이렇듯 그가 그릇을 만드는 마음의 중심에는 늘 소박함이 있다.

그의 집은 문경읍 당포리에 있다. 옛 화지동이라 불렀던 마을이다. 화지(花枝)는 ‘꽃가지’이다. 18세기 우리 지역의 유학자이며 여행가였던 옥소 권섭은 이곳을 화지동천(花枝洞天)으로 이름 지어 신선이 사는 하늘나라에 비유하였다.

마을에는 수백 년이 넘었을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동네 곳곳에 있다. 빼어난 수석 한 점을 닮은 성주봉은 하늘 마을 ‘당포’를 완성하는 그림이다. 첫 봉우리인 수리봉은 비가 오면 낙수(落水)가 폭포가 되는 장관을 연출한다.

옥소 권섭은 이곳에 집을 지어 화지장(花枝莊)이라고 했다. 그리고 들에 가득했던 김매는 소리와 이를 구경하던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바람소리에 섞여 절에서 들려오던 종소리 등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글을 지어 남겼다.

그가 떠나고 한참이 지난 뒤, 당포마을에 가장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도예 명장이 터를 잡고 있다. 옥소 권섭은 화지장기에서 온 마을이 감나무가 숲이라고 했다. 그리고 가을이 되어 감이 붉어지면 마치 무릉도원 같다고 했다.

감은 서민의 과일이다. 그리고 떫은맛은 소박함의 표현이기도 하다. 감의 소박함을 잊지 않은 그는 대한민국 도예 명장이 되었고 세계인의 마음을 훔쳐내었다.

옥소 권섭이 떠난 화지동천을 경영할 이를 굳이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될 듯하다.


010-9525-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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