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0-07-04 오전 09:27:37

          사설김안제 박사의 隨想종합강성주의 역사에서 배운다지홍기 교수의 제4차 산업혁명시대강성주의 뉴스로 세상읽기

전체기사

커뮤니티

공지사항

독자투고

직거래장터

자유게시판

결혼

부음

뉴스 > 김안제 박사의 隨想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허운의 세상 사는 이야기...아직도 눈이 내립니다

2009년 12월 24일 [(주)문경사랑]

 

허운 이창녕

가은읍 출생
전 점촌초등학교장


ⓒ (주)문경사랑

고차비재를 넘어온 눈보라가 고짐모티를 돌아 관산들로 휘돌아 갈 때면,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우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네 추자 나무 아래로 모여듭니다.

동네를 둘러싼 산등성이에 우리가 모여 있는 추자 나무 위에 어느새 흰 눈이 소복이 쌓여 갑니다. 냇물까지도 눈에 덮여 지평선인양 무한한 그리움을 안고 절절한 흰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두툼한 솜바지에 토끼털 귀마개를 하고 넉가래나 싸리비를 손에 든 모습들이 마치 전장에 나가는 병사 같기도 했습니다.

도화지 같은 눈 위에 여럿이 손 붙들고 하나 둘 셋 하고 같이 들어 누워서, 찍어보는 눈 밭 사진은 아직도 내 가슴속에서 현상 중입니다.

힘이 센 친구가 먼저 넉가래로 눈을 밀고 가면, 뒤에 남은 꼬맹이들은 싸리비로 쓸면서 뒤 따라 갑니다. 한참을 그렇게 치우다 보면 추위는 어디로 갔는지, 모두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얼굴을 문지르며 눈싸움이 시작됩니다.

동네를 가로지르는 냇가를 경계로 자동적으로 늘 그렇게 편이 나뉘어 집니다.

자기 편 끼리도 해야 할 일이 분담되고 모두는 대장의 말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눈을 뭉치는 사람, 뭉친 눈을 가져다주는 사람, 뭉친 눈을 받아서 싸우는 사람 등, 잘 짜여진 벌들의 조직 사회처럼 모두가 활기차게 움직입니다.

그렇게 한 바탕 눈싸움을 하다가 총 대장이 그만하고 눈 치우자 하면 눈덩이에 맞아 얼얼 하는 얼굴도, 아직도 분이 남아 식식거리는 친구들도 이내 흰 이빨을 들어내고 씩 웃고는, 한 뼘이나 빠진 코를 후루룩 빨아들입니다.

동네를 하얗게 덮은 눈을 치우는 일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 아버지들로부터 형님 그리고 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물림이며 마을의 약속입니다.

아무도 토를 다는 사람이 없고 누구도 거부하지 못하는 전설적인 불문률이 되었습니다.

눈 속에서 새로 난 길을 따라 동생들이 깡충깡충 뛰다가 미끄러지면서도 까르르 웃는 그 모습들이 아직도 내 가슴속에는 흑백 사진으로 남아 있습니다.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어른들이나 청년들, 개구쟁이까지 법정 공휴일이 됩니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결석은 결석이 아니라 출석으로 처리되었거든요.

그래서 학교 가기 싫은 날은 겨울 하늘을 자주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눈이 내린 날 학교 가는 길은 다른 날 보다도 즐겁고 신명이 났습니다.

이런 날은 잘 하면 공부는 안하고 온통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야산으로 토끼 잡으러 가기도 했습니다.

손에든 막대기로 고물이 된 세수 대야나 함석 쪼가리, 깨진 주전자 등 여러 가지 고물 쇠붙이를 정신없이 두드리면, 혼비백산한 토끼들이 푹푹 빠지는 눈 속에서 갈팡질팡할 때 토끼와 눈 속에서 몇 번을 뒤잽이를 하다가 기운 빠진 토끼를 잽싸게 낚아 챕니다.

그리고 개선장군을 능가하는 기분으로 선생님에게 갔다 바치면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주심을 평생의 광영으로 알았던 그 때 그 시절이 왜 이렇게 그리울까요?

아직도 옥녀봉 비탈에는 눈 속에 갇혀있는 토끼들이 많을 텐데...

잡은 토끼야 모두 선생님들 차지지만 그래도 노는 즐거움은 우리들 차지였으니까요.

창문 너머로 쏟아지는 목화 솜 같은 눈을 보면 온갖 상상들이 추운 겨울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줍니다. 눈 오는 날은 수업을 빼먹고 딴 짓을 일삼아도 그다지 나무라지 않으신 그 때의 선생님들이 어쩌면 자연 속 좋은 공부를 시켜주셨는지도 모릅니다.

겨울밤, 잔뜩 찌푸린 하늘을 보며 잠이 든 날 아침에 새하얀 눈이 내리기를 기도하면서 꿈나라로 여행을 떠납니다. 어쩌다가 그 기도가 맞아떨어지는 날이면 내 기분은 두둥실 구름 위를 나르고 또 나른답니다.

그러면 또 솜바지 저고리에 토끼털 귀마개를 한 친구들은 동네 추자 나무 아래로 모여듭니다. 재잘거리며 웃는 소리와 넉가래가 부딪히는 소리 싸리비가 땅바닥을 빗질하는 소리들로 동네는 한 바탕 전운이 감돕니다.

그래서 지금도 겨울이면 내 가슴속에는 그 시절의 눈이 아직도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옛 생각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고맙습니다.

편집인 기자
“주간문경을 읽으면 문경이 보인다.”
- Copyrights ⓒ(주)문경사랑.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문경사랑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주)문경사랑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문경시 재향군인회 안보현장체험

문경새재 랜드마크 ‘엘파크 문경 ..

문경시의회 제238회 제1차 정례회 ..

문경시농업기술센터 2개 업체와 농..

연극 ‘월곡동 산 2번지’ 이틀간 ..

운강 이강년의병대장기념사업회 사..

문경시립모전도서관 작가와 함께 하..

문경시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문경시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대한민국 동행세일 일환 전통시장&#..

창간사 - 연혁 - 조직도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구독신청

 상호: (주)문경사랑 / 사업자등록번호: 511-81-13552 / 주소: 경상북도 문경시 점촌2길 38(점촌동) / 대표이사: 황진호 / 발행인 : 황진호 / 편집인: 황진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진호
제호: 인터넷주간문경 / 등록번호: 경북 아00151 / 종별: 인터넷신문 / 등록일 2010.10.28 / mail: mginews@daum.net / Tel: 054-556-7700 / Fax : 054-556-9500
Copyright ⓒ (주)문경사랑.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