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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不惑)과 노욕(老慾)

2020년 10월 30일 [(주)문경사랑]

 

 

↑↑ 김 안 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문경대학교 석좌교수
한국자치발전연구원 원장

ⓒ (주)문경사랑

 

중국의 대성(大聖) 공자(孔子, 552~479 B.C.)께서는 오랜 수련을 거쳐 드디어 40대에 이르러 ‘불혹(不惑)’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여기서 ‘혹(惑)’이란 말은 미혹함, 의심함, 현란함, 어지러움, 헤맴의 뜻을 갖고 있으며, 불교에서는 정도(正道)의 장해가 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불혹’이라 함은 세상일에 미혹(迷惑)하지 않는 것, 나쁜 길로 유혹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이런 경지에 이른 나이를 ‘불혹지년’ 또는 ‘불혹지세(不惑之歲)’라 하며, 공자는 40대에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 ‘논어(論語)’에서 이 구절을 읽으면서는 40세에 이르면 저절로 불혹의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그래서 그렇게 되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닫고 보니 40대의 연륜에 들어섰고 저절로 될 줄 알았던 불혹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이제 비로소 본격적인 사회활동을 시작하였으며, 부모님과 처자식을 돌보아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40대의 나이에 일체의 미혹이나 유혹에서 떠나라고 하니 얼마나 황당하고 무리한 요구라고 하겠는가? 불혹은 고사하고 오히려 세상일에 더 미혹되고 현혹되는 ‘우혹(尤惑)’ 또는 ‘탐혹(耽惑)’의 지경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필요와 욕심과 경쟁에서 가장 유혹에 약할 40대의 연령층에게 불혹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고 잔인하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욕심(慾心) 또는 욕망(慾望)이라는 본성을 갖고 있다. 욕심이란 자기만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 탐내는 마음, 또는 분수에 지나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을 말하며, 욕망 또는 욕구는 부족을 채우려고 하는 마음을 일컫는다. 사람을 위시한 모든 동물은 세 가지 자연적이고 근본적인 욕망을 갖고 있으니, 식욕(食慾)과 성욕(性慾) 및 수면욕(睡眠慾)이 그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들 세 가지를 삼욕이라 하며, 동물들의 지속적 생존을 위한 불가결한 필수적 요건인 것이다.

여기에 다른 동물과는 달리 사람만이 갖는 욕망인 물욕(物欲)과 명예욕(名譽慾)을 합친 다섯 가지를 오욕 또는 오진(五塵)이라고 부른다. 인간이 갖고 있는 이러한 다섯 개의 욕구는 저절로 형성된 자연적인 것이든 천지를 창조한 신이 부여한 것이든 천부적으로 주어진 인간 본성이기 때문에 그 자체를 비난하거나 죄악시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이러한 욕심이 인간에게 없다고 하면 인류사회의 발전은 고사하고 인간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인류는 오랜 세월동안 그들이 지닌 삼욕 내지 오욕의 충족을 위해 끝없는 투쟁과 노력을 지속해왔으며, 오늘날 70억 인류의 존재와 번영은 이러한 투쟁과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어느덧 나의 나이가 80세, 곧 산수(傘壽)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야 좀 불혹의 경지를 이해할 것 같으니, 공자께서 터득한 40대의 연령에 비해 꼭 두 배의 기간에 해당된다. 그것도 불혹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것이 아니라 불혹이 어떤 상황인지를 조금 알게 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에 오랫동안 존재해있던 욕심도 조금은 줄어든 것 같으나 새로운 욕심이 더하여져서 욕심의 총량은 거의 일정한 것 같다.

불혹이 조금 생기고 노욕이 약간 줄어든 듯한 것은 수양과 절제의 결과로 그렇게 된 것이라기보다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다는 체념과 단념, 또는 포기에 의해 나타난 불가피한 현상이 아닌가 한다.

이제부터 꼭 실천해야 할 한 가지 결심이 있으니, 그것은 불혹이 아닌 우혹이나 탐혹, 그리고 비운 마음이 아닌 노욕으로 인해 남에게 추한 모습을 보이거나 더욱이 남에게 부담과 피해를 주는 꼴불견의 노인이 되지 않도록 생활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덕스러운 칭송을 들으며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는 ‘유호덕 고종명(攸好德考終命)’의 참된 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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