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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와 사명당

2020년 04월 17일 [(주)문경사랑]

 

 

↑↑ 김 안 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문경대학교 석좌교수
한국자치발전연구원 원장

ⓒ (주)문경사랑

 

우리나라 역사상 유명한 고승은 많이 있었지만 국가가 난국에 처했을 때 구국의 길에 나서 헌신한 스님은 흔치 않았으나, 서산대사(西山大師)와 사명당(四溟堂)은 예외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분은 조선조 중엽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승병장(僧兵將)으로서 큰 공적을 남겼던 것이다. 벼슬도 재물도 탐하지 않고 오로지 나라와 중생을 위해 하늘을 대신하여 불의(不義)에 맞서 싸웠던 것이다.

서산대사는 1520년 중종(中宗) 15년에 평안도 안주(安州)에서 태어났으며 속성은 완산최씨(完山崔氏)이고 본명은 여신(汝信), 아명은 운학(雲鶴),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허(淸虛)였다. 별호는 서산대사∙백화도인(白華道人)∙풍악산인(楓嶽山人)∙두류산인(頭流山人)∙묘향산인(妙香山人)∙조계퇴은(曺溪退隱)∙병로(病老) 등이며, 법명은 휴정(休靜)이다.

영관대사(靈觀大師)에게 불법을 듣고 중이 되었고, 1549년 명종(明宗) 4년에 승과(僧科)에 급제하고 대선(大選)을 거쳐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었다. 한 때, ‘정여립(鄭汝立)의 반란’에 사명당과 함께 연루되었다는 모함을 받아 투옥되었으나 무고로 판명되어 석방되기도 하였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선조(宣祖)의 부름을 받고 의병승(義兵僧)을 모아 의병장으로 많은 공을 세웠다. 그리하여 팔도선교도총섭(八道禪敎都摠攝)이라는 직책을 갖기도 하였다.

1604년 선조 37년 1월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입적하니, 향년 85세였고 법랍(法臘) 67세였다. 입적 후 21일 동안 그 방안에는 기이한 향기가 가득했다고 한다. 저서로 ≪선가귀감(禪家龜鑑)≫이 있고 전쟁 중에 권선징악(勸善懲惡)의 뜻을 담은 ≪회심곡(回心曲)≫이라는 노래를 지어 널리 부르게 하였다.

사명당은 1544년 인종(仁宗) 원년에 경남 밀양(密陽)에서 출생하였다. 속성은 풍천임씨(豐川任氏)이고, 아명은 응규(應奎), 자는 이환(離幻), 법명은 유정(惟政), 법호는 송운(松雲)∙사명당이었다.

직지사(直指寺)에 들어가 신묵화상(愼黙和尙)의 강론을 듣고 선지(禪旨)를 깨달았고, 1561년 명종(明宗) 16년에는 선과에 급제했으며 1575년 선조 8년에는 묘향산에 가서 서산대사의 제자가 되었다.

임진왜란의 발발과 함께 1,000여명의 승병을 거느린 의병장이 되어 승군부총섭(僧軍副摠攝)이란 직책을 가지고 서산대사의 지휘를 받아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1596년 9월에는 왜적을 크게 격파하고 남한산성에 입성하였으며, 그 이듬해 2월에는 왕의 직첩(職牒)을 받기도 하였다.

1604년 선조 37년 8월에 국서(國書)를 들고 사신으로 일본(日本)에 가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을 만나 강화를 체결하고, 다음해 5월에 일본에 잡혀간 3,000명의 우리 동포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일본 체류 중에 사명당이 보여준 여러 기적이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으며 한양거사(漢陽居士)가 지은 ≪한양가(漢陽歌)≫에는 다소 과장된 여러 기적들이 소개되어 있다. 사명당은 1610년 광해군(光海君) 2년 8월 26일에 해인사(海印寺) 홍제암(弘濟庵)에서 입적하시니 향년 67세였고 법랍 54세였으며 시호(諡號)는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였다.

종교에는 국경이 없지만 신자에게는 국경이 있다. 따라서 나라가 위태로우면 나아가 막아야 하고 살생을 금하고 있지만 대의(大義)를 위해서는 작은 살생은 범할 수 있다.

사군이충(事君以忠)과 살생유택(殺生有擇)의 화랑(花郞)정신은 어떤 종교의 신자에게도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평화시에는 스스로의 도를 닦고 중생을 선도하지만 국난시에는 나아가 몸소 이를 극복하는 자세야 말로 신자의 올바른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서산대사와 사명당 두 분은 호국불교(護國佛敎)의 정신으로 국난을 극복하고 중생을 구제하는 큰일을 하였기에 우리 역사에 기리 그 공적이 빛날 것이며 저승에서는 극락에 가서 부처님을 모시고 복된 영생을 누리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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