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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아주는 사람

2020년 04월 10일 [(주)문경사랑]

 

 

↑↑ 김 안 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문경대학교 석좌교수
한국자치발전연구원 원장

ⓒ (주)문경사랑

 

옛날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때 진(晉, 775~403 B.C.) 나라에 예양(豫讓)이란 선비가 있었다. 여러 사람을 섬겨 봤으나 자기를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다가 지백(智伯)이란 사람을 만나게 됨에 자기를 극진히 대해주고 자기를 올바로 알아주었다.

지백이 조(趙, 453~403 B.C.) 나라의 양자(襄子)와 싸워 패하고 전사하였더니 조양자는 지백의 머리뼈에 옻칠을 하여 술그릇으로 사용하였다.

예양은 지백의 원수를 갚으려고 자객이 되어 몇 번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고 결국 붙잡히고 말았다. 그 이유를 묻는 조양자에게 예양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선비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얼굴을 다듬는다[士爲知己者死 사위지기자사 女爲說己者容 여위열기자용]”.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양자의 옷을 한 벌 달라고 부탁하여 그 옷을 칼로 세 번 찌르고 스스로 자결하였던 것이다.

중국 전한(前漢)의 사마천(司馬遷, 145~68 B.C.)이 기원전 97년에 완성한 ≪사기(史記)≫란 역사책의 자객열전(刺客列傳)에 수록되어 있는 고사이다. 이는 또한 ≪전국책(戰國策)≫에도 언급되어 있다.

고대 로마제국에도 이와 같은 격언이 유행하고 있었으니,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내 놓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중국 주(周)나라 때의 강태공(姜太公)은 자기를 알아주어 위수(渭水)까지 찾아온 문왕(文王, 1185~1135 B.C.)의 간청을 받아 곧은 낚시를 거두고 80세의 나이에 벼슬길에 올랐다.

문왕 및 그 아들 무왕(武王, 1169~1116 B.C.)을 도와 강력하고 편안한 국가로 발전시켜 기원전 1123년에 은(殷)나라를 멸망시키고 주(1123~256 B.C.) 나라를 건국하였으며, 그 자신은 제(齊, 1123~386 B.C.)의 왕후가 되고 시조가 되었다.

또한 중국의 삼국시대 때, 촉한(蜀漢)의 유비(劉備, 160~223)로부터 높은 인정을 받아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정성에 출사를 하여 대를 이어 충성을 다 바친 제갈공명(諸葛孔明, 181~234)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몸을 바친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우리나라 신라 중엽 때, 신라의 왕족인 김춘추(金春秋, 602~661)와 가락국의 후손인 김유신(金庾信, 595~673)은 젊은 나이에 만나 의기가 투합하고 서로를 알아주는 진실된 친구가 되었으며, 김춘추는 정치와 외교에 전념하고 김유신은 군사와 국방에 진력함으로써 삼국통일의 기반을 놓았고 결국 그 과업을 성취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조선조 선조(宣祖) 임금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었다. 당시 재상이었던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은 남쪽 바다의 수군을 다스릴 장군으로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을 강력히 추천하였고 이순신이 죄의 누명을 쓰고 위기에 처했을 때도 극구 변명하여 복귀할 수 있도록 힘쓴 사람이 유성룡이었다.

이순신의 인물됨을 제대로 알아준 사람이 유성룡이었고, 이순신은 유성룡의 기대를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고, 또 그 사람을 위해 신명을 바쳐 희생한 값지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고금의 동서양을 통해 많이 있어왔다.

나는 초등학교부터 줄곧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어서 학교 선생님들과 동리 어른들, 그리고 친구들의 대부분이 나를 알아주었다. 그리고 사회인이 되어서도 국가와 민간부문의 많은 기관으로부터 높은 인정을 받아왔다. 만일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생명을 내 놓아야 한다면 나는 아마 수백 개의 목숨을 갖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고맙다. 강태공이 주문왕을 만난 것이 80세였으니, 선팔십(先八十)을 보낸 나도 세월을 낚으면서 나를 알아보고 찾아올 대인(大人)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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