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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토분쟁(66):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17): 일본 해군 수로지(水路誌)-1

2018년 11월 20일 [(주)문경사랑]

 

 

↑↑ 강성주
재경문경시향우회장
전 포항문화방송 사장

ⓒ (주)문경사랑

 

메이지유신을 단행하고, 오랫동안 유지해 오던 태정관(太政官) 제도를 폐지하고 1885년 내각제를 채택한 일본은 서양의 새로운 제도를 받아들여 여러 분야에서 나라를 근대적인 형태로 바꿔가기 시작한다. 사실 그 얼마 전부터 태정관은 일본 최고 행정기구라는 권위와 힘을 잃고 누수가 시작됐다.

“울릉도와 독도가 이웃 조선의 영토이니까, 명심하라!”고 한 태정관 지령이 외무성에서 무시당한 것이 그 한 예가 되고(1877), 또 “울릉도를 다케시마[竹島], 독도를 마쓰시마[松島]라고 부르는 일본 내의 관행도 해군성이 마음대로 바꾼 것을(1880) 우리는 앞에서 보았다. 일본 태정관 산하 8개 성[八省] 가운데 하나였던 병부성도 1872년에는 육군성과 해군성으로 분리돼, ‘부국강병의 최첨병인 군부로 점차 힘이 몰리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일본 해군도 하나씩 자리를 잡아갔다. 일 해군성 수로부는 1883년에 처음으로 <환영수로지, 寰瀛水路誌>를 발행했다. ‘세계 바다의 수로지’라는 뜻의 이 수로지는 이름과는 약간 다르게 전 세계가 아니라 일본과 조선, 러시아의 동해안을 중심으로 수로를 소개하고 있다.

이 수로지 제2권 제4편 “조선 동안(東岸) 및 제도(諸島)”부분에 독도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앞에서 말한대로 이 수로지에는(1883년 제 1판과 1886년 제2판 모두 같은 내용으로) 독도를 ‘리앙코르트 열암(列岩)’이라고 아래와 같이 기록했다.

“이 열암(列岩)은 1849년 프랑스 선박 리양코르트(Liancourt)호가 처음으로 발견하여, 선명(船名)을 취하여 ‘리양코르트 열암’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후 러시아 프리게이트형 함선 ‘팔라스’[Pallas]호는 이 열암을 ‘메나라이[東島]’ 및 ‘오리부차[西島]’ 열암이라고 칭하고, 1855년 영국 함선 ‘호르넷트’[Hornet]호가 이 열암을 탐검(探檢)하여 ‘호르넷트 열도’라고 이름 붙였다. 그 함장 호르시스의 말에 의하면 이 열암은 북위 37도 14분, 동경 131도 55분에 위치하는 불모의 두 암서(岩嶼)로서 새똥[鳥糞]이 항상 섬 위에 쌓여 있어, 섬의 색이 이 때문에 희다. 북북서로부터 남동동에 이르는 길이 약 1리이고 두 섬 간의 거리는 4분의 1리로서 보이는 곳에 암초맥이 있어 이를 연결한다. 서도[西嶼]는 해면으로부터 높이가 약 410척[약 123m]으로서 형상은 당탑(糖塔)과 비슷하다. 동도[東嶼]는 비교적 낮고 평평한 정상으로 되어있다. 이 열암 부근의 수심은 상당히 깊을 지라도 그 위치는 하코다테(函關)를 향하여 일본해를 항행하는 선박의 직수도(直水道)에 해당하므로 상당히 위험하다.”

일본은 그 동안(최소한 막부에서 도해금지령을 내린 1696년 이후) 독도를 ‘마쓰시마’[松島]라고 불러왔는데, 앞에서 살펴봤듯이 해군성은 이 역사를 완전히 무시하거나 잊어버린 것이다. 개항 이후 2차 대전 패전으로 까지 이어지는 일본의 행태를 보면, 국가와 국익을 앞세운 군국주의 군부의 독단과 무모함 등이 이때부터 시작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일 해군성이 <환영수로지>를 펴낸 지 10년이 지난 뒤인 1894년, 일 해군 수로부는 <조선수로지,朝鮮水路誌>를 별도로 펴낸다. 이 수로지의 제 4편 ‘조선 동안[東岸] 및 제도’에 리안코르트 열암과 울릉도[마쓰시마]에 관한 내용을 기록했는데, 그 내용은 <<환영수로지>>와 같다. 이것은 그 당시 일본 해군 수로부가 독도를 조선의 동쪽 바다에 위치한 조선의 섬으로 인정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로 곧잘 인용된다. 일본 해군은 5년 뒤인 1899년에 <<조선수로지>> 제2판을 발행했는데, 독도와 울릉도에 관한 기록은 제1판과 같았다.

조선수로지 제 1판을 발행하고 3년이 지난 1897년, 일본 해군은 처음으로 <<일본수로지>>를 발행한다. 제 4권 제 3편에는 혼슈 북서안(本州 北西岸, 일본 본섬의 왼쪽, 즉 한국의 동해를 말한다)에 관한 기록이 있다. 여기에는 독도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섬인 오키섬(4개의 큰 섬으로 구성. 혼슈의 시마네 반도로부터 북쪽으로 50km정도 떨어져 있다)에 관한 내용은 있으나, 독도에 관한 내용은 없다. 당시의 일본 해군은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수로지의 독도와 관련한 내용에 변화가 생긴 것은 1907년 3월에 발행한 <조선수로지>부터이다. 이는 일본정부가 1904년 11월 독도를 ‘다케시마’로 이름을 바꾸기로 했기 때문이다. 1905년 2월 일본은 독도를 시마네현 오키섬에 비밀리에 편입시켰다. 그럼에도 1907년 3월, 독도는 여전히 <일본수로지>가 아닌 <조선수로지>에 기록되었다. 일본이 아닌 조선의 영토라고 여긴 것이다. 다음에 그 내용을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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