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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토분쟁(69):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20): 일본, 독도 편입-1

2018년 12월 21일 [(주)문경사랑]

 

 

↑↑ 강성주
재경문경시향우회장
전 포항문화방송 사장

ⓒ (주)문경사랑

 

대한제국 광무(光武,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연호) 4년(1900년)에 내린 이 칙령(勅令)은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독도의 진실>(소담출판사, 2012>이라는 책을 쓴 강준식은 이 칙령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한다.

“... 꼭지를 도려내면 오렌지가 저절로 해체되듯 모든 일에는 급소가 있기 마련이다. 독도 문제의 급소는 바로 미국이다. 국제 질서나 국제 정의의 본질은 힘의 논리에 입각해 있고, 어제나 오늘이나 일본이 미국에 기대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변죽을 울릴 것이 아니라 미국의 입장부터 돌려놓아야 한다. 당초 미국이 일본을 편든 것은 앞에서 언급했듯 1905년 일본의 독도 편입을 합법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은 독도가 조선 왕국의 일부였던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주장했고, 미국은 그 논리를 받아들여 독도 문제에서 일본의 입장을 지지해 온 것이다. 따라서 그 논리를 깨면 된다. 우리에게는 그 논리를 깰 수 있는 카드가 하나 있다. 바로 1900년에 반포된 대한제국의 칙령 제41호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 엄연한 사실을 두고도 일본은 독도가 결국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해, 미국까지 일본의 주장이 근거가 있다고 믿게 하고 자기 편을 들게 했다.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는 울릉도와 죽도, 석도가 있을 뿐 독도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칙령 속의 ‘석도’가 바로 ‘지금의 독도’라는 것을 증명하면 되는 것이라고 강씨는 말한다. 이 책은 이어 울릉도로 많이 이주한 전라도 사람들이 흔히 ‘돌(石)’을 ‘독’이라고 발음하며, ‘돌로 이루어진 돌섬’인 독도는 뜻[意味]으로는 석도(石島)가 되고, 발음[發音]으로는 ‘돌섬’ ‘독섬’ 등으로 불리다가 독도가 됐다고 설명한다.

그럼, 이제는 1905년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으로 편입한 데 대해 좀 자세히 살펴보자. 앞에서 말했듯이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강제 개국을 당한 뒤부터(1854) 국력을 기르기 위해 재빨리 움직인다. 개국 초기 막부(幕府, 일본의 무신정권인 막부는 가마쿠라[鎌倉] 막부, 무로마치[室町] 막부, 도쿠가와[德川] 막부까지 700년 가까이 유지됨, 1192~1867.11.9) 폐지 등 내부 문제가 정리되자(1868년 메이지 유신 단행) 일본은 한 해 재정 수입의 2%에 해당하는 거금을 들여 정부 관리 49명을 포함한 100여명의 <이와쿠라 사절단, 岩倉使節團, 1871~1873>을 미국과 유럽 12개국으로 2년 가까운 장기간 파견해 서양의 앞선 문물들을 “미친 듯이 배워서 그런 수준에 도달하겠다(오쿠보도시미치)”는 결의에 차 있었고, 또 실제 그렇게 했다. 1870년대 일본에서 진행된 “문명개화(文明開化) 작업”은 어지러울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당시 독일 통일을 주도한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1898)의 충고에 따라 육군은 프러시아(Prussia,독일)식을 따르고, 해군은 당시 세계 최강국인 영국식, 산업 발전은 정부 주도 발전 형식인 프러시아 모델을 따르기’로 의견을 모으고 근대화 작업을 진척시킨다. 일본은 그때 까지 천년 이상 문명을 전파해 주고 가르쳐준 중국을 폐기처분하고 새로운 성장모델로 독일을 주목한 것이다. 일종의 배은망덕이라고나 할까?

아편전쟁에서 굴욕을 당한 중국도 비슷한 무렵 양무운동(洋務運動, 1860~1894)을 시작해 서양 배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역사는 일본의 손을 들어준다. 청나라의 양무운동은 한반도[조선반도]에서 벌어진 청일전쟁(1894.7~1895.4)에서의 패배로 인해 막을 내리게 된다. 청나라는 30년 가까이 서양의 과학기술, 무기 등을 도입했지만, 후진국으로 깔보던 섬나라 일본한테 패배한 뒤, 양무운동을 더 이상 고집하기가 어려웠다.

청일전쟁을 마무리 하는 강화조약이 바로 <시모노세키조약>(馬關條約, 1895. 4. 17)으로, 일본의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와 청나라 이홍장(李鴻章) 사이에 맺어진 5개항의 조약이다. 제1항이 바로 “청국은 조선으로부터 종주권을 영구히 포기하고, 조선의 완전한 해방을 승인한다” 일본의 전쟁 목적이 바로 드러난다. 제2항, “청나라는 랴오둥(遼東) 반도, 타이완(臺灣) 섬, 펑후(澎湖)제도 등 부속 여러 섬의 주권 및 그 지방에 있는 성루(城壘), 병기제조소 등을 영원히 일본제국에 할양한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은 이때부터 ‘해외의 땅따먹기’에 재미를 붙인다. 늦었지만 일본도 제국주의적인 식민지 확보에 나서게 된다. 그것이 일본이 배운 부국강병의 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강대국이 되는 것으로 알았다.

청나라와 일전을 겨루어서 승리한 일본은 이 조약을 바탕으로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간섭을 물리치고 조선은 물론 만주로 까지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배웠듯이 <시모노세키조약>에 따른 랴오둥반도 할양은 3국 간섭(러시아, 독일, 프랑스)에 의해, 엿새 만에 취소된다. 이러한 국제 정세에 따라 일본의 약세를 파악한 조선은 러시아를 끌어 들이고 일본을 배제하는 ‘인아거일(引俄拒日)’ 정책을 펴게 되고, 일본은 이에 대항해, 일본을 거부하는 명성황후를 살해하는(을미사변, 1895.10)등 조선 병탄(倂呑)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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